[與 파병안 단독처리]명분은 좋지만 밀어붙이기 오점

  • 입력 1999년 9월 28일 19시 40분


동티모르 파병안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전투부대를 투입하는 ‘외교적 사건’이지만 그 처리과정은 이같은 의미에 걸맞지 않게 여러 문제점을 남겼다.

우선 국군의 해외파병 때 국회동의는 헌법에 명시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여당은 사실상 ‘사후동의’를 구하는 식으로 밀어붙여 적지 않은 비판을 자초했다.

홍순영(洪淳瑛)외교통상부장관은 “대통령이 유엔의 요청도 있기 전에 먼저 파병을 ‘약속’한 게 아니라 분명히 국회동의를 전제로 ‘파병의지’를 보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실제과정은 ‘김대통령의 파병발표→유엔요청→국회동의안 상정→급행심의→파행처리’로 치달았다.

여당은 일부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처럼 주장했지만 국회의 처리과정은 ‘졸속’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통일외교통상위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도 “지금까지 유엔평화유지군 파견결정에 3개월 이상의 준비기간을 거쳤는데 이번엔 1개월 미만의 준비기간밖에 없어 의안심의에 지장을 초래했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결국 1개 대대의 파병부대는 야당의 ‘환송’조차 받지 못한 채 ‘인권의 사각지대’로 일컬어지는 동티모르로 향하게 됐다.

또 정부는 이번 파병이 2000년대 한국 외교의 기조를 ‘인권외교’로 자리매김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여당 내에서조차 “김대통령이 ‘인권지도자’라는 국제적 명성에 지나치게 집착한 느낌이 없지 않다”는 자성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의 태도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말로는 ‘젊은이의 생명’과 인도네시아 교민들의 안전을 얘기하면서도 김대통령 ‘흠집내기’에 더 열중한 흔적이 적지 않다.

근거도 분명치 않은 ‘노벨평화상을 위한 파병’이라는 식의 시각이 그 대표적 사례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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