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상원 CTBT 부결]지구촌 核억제 명분 잃었다

  • 입력 1999년 10월 14일 19시 35분


미국 상원이 13일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 비준안을 거부함으로써 핵확산 저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됐다.

비준안 부결이 미국의 국가 안보와 세계 지도자의 역할을 훼손하고 국제정세의 불안정을 가중시킨다는 백악관측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주도의 상원은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감정까지 겹친 당 노선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 北에도 부정적 영향

CTBT를 주도한 미국이 비준을 거부하고 나옴에 따라 그동안 조약의 서명 및 비준을 미루거나 거부해온 다른 나라들은 새삼스레 명분을 얻게 됐고 국제사회의 핵확산 저지 노력은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 민간단체인 ‘핵위협 감축연대(CRND)’의 대표 대릴 킴볼은 “상원의 비준안 부결은 역사적 실책”이라며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은 이제 CTBT 비준을 중요시하지 않고 핵실험을 재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살 만한 세상 회의(CLW)’ 대표인 존 이삭스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재개하고 이어 중국 러시아도 핵실험에 나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도 12일 상원에서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하고 CTBT 체제에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이 먼저 CTBT 비준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 미국의 비준 거부는 북한의 핵개발 동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제시 헬름스 상원 외교위원장은 △CTBT 체제만으로 세계 각국의 핵실험을 막을 수 없고 △핵실험을 금지할 경우 노후화하고 있는 미국의 핵전력을 유지하기 힘들며 △테러단체나 독재자들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로스앨러모스연구소 등 미 3대 핵연구소 관계자들도 △국방예산 축소 △핵무기 노후화 △전문가 부족 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핵실험을 불법화하는 경우 국가안보가 크게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미 뉴욕타임스는 14일 전했다.

★ 조약발효 힘들게 돼

전문가들은 미국의 비준 거부로 조약 자체가 사문화됐다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단기간 내에 발효를 기대할 수는 없게 됐다고 말했다.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 핵프로그램 소장인 토머스 코크란은 “내년 대선의 유력한 후보인 공화당의 조지 W 부시도 비준을 거부하고 있는 입장이어서 새 행정부에서도 비준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클린턴 대통령은 가장 공을 들이던 조약비준에 실패해 중국의 WTO 가입 등 눈앞에 닥친 외교문제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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