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문〓독일연방공화국 수립 5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위기를 극복해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슈라이버 전총장〓첫번째 위기는 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비롯됐습니다. 동서독은 각기 자신이 속한 국제체제(미국과 구소련 중심 체제)로 점점 더 얽혀 들어갔고 독일민족의 단일성은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두번째 위기는 68년 학생혁명이었습니다. 네오 마르크시스트들은 자본주의와 빈부격차를 비판했고 당시 서독정부와 서방세계가 맺고 있던 관계들을 해체시키려 했습니다.
세번째 위기는 70년대 오일쇼크였습니다. 파괴를 딛고 이룩한 경제적 성과가 얼마나 탄탄한지에 질문을 던지는 사건이었습니다.
네번째 위기는 동독의 붕괴였습니다. 통일은 환영할만한 일이었지만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화합과 이성으로 이런 위기들을 극복해 왔습니다. 최근에도 좌우파간의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새 정부가 화합 복지 등 당면 과제를 훌륭히 해결해 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김고문〓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10년이 됐지만 동서독 주민간에는 아직도 심리적 갈등관계가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상대적 박탈감 문제
▽슈라이버 전총장〓통일후 법적으로는 동서독 주민이 완전히 동등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입니다. 구동독의 일부 주민은 일거에 소득의 50%를 잃었습니다. 구서독의 경쟁적 사회체제가 동독에 도입되자 구동독 주민은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사회적 개인적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습니다.
최근 선거결과 민사당(PDS·구동독 집권 사회주의통일당 후신)은 동베를린 지역에서 35%의 지지를 얻었지만 서베를린 지역에서는 4%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바로 인접한 두 지역의 심리적 거리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양측의 경제적 심리적 격차는 조금씩이나마 해소되고 있습니다.
▽김고문〓통일 과정에서 정치적 결정 못지 않게 양측 주민의 심리적 통일성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양 지역의 교회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슈라이버 전총장〓교회가 사회 안에서 갖는 역할이 전 시대보다는 많이 줄었습니다. 구동독 지역 주민은 정치적 억압에 대한 위안을 교회를 통해 얻었으므로 결과적으로 교회가 통일에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김고문〓법학자로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 부패 캠페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독일에 부패방지를 위한 특별한 법이 있습니까?
◇ 전문검사 부패 척결
▽슈라이버 전총장〓한국의 그런 움직임은 환영할 일이지만 한국 실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독일의 사례를 설명하겠습니다.
독일도 발전 과정에서 많은 부패상을 경험했고 특히 일부 지역과 건설업 분야에서 부패는 심각했습니다. 법률을 정비하고 이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검사를 투입해서 부패에 효과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이와 함께 건축 기술분야의 감리를 더 엄격하게 하자 건설분야의 부패도 사라져갔습니다.
▽김고문〓최근 한국에서는 도청과 감청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가의 안전을 위한 합법적 감청이 어느 정도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도·감청 용납못할 일
▽슈라이버 전총장〓도청이나 감청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기본권의 침해입니다. 이것이 허용된다면 국민이 항상 불안해 할 것입니다.
▽김고문〓법관 교수 총장 등 다양한 경력에 따른 경험에 비춰 법관 양성의 이상적인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슈라이버 전총장〓독일의 법관 양성과정도 좋은 평가만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법학 전공 학생이 지나치게 많고 사법시험 합격비율도 높다보니 법관이 너무 많고 자연히 질이 떨어지는 법관도 나오게 됩니다.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라덴부르크 위원회’가 활동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고문〓세계는 점점 더 국경의 의미가 약화돼 가고 국가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 국제자본 규제 필요
▽슈라이버 전총장〓국가간의 자본 이동을 막을 수 있는 제도나 기관은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거대기업에 의한 국제적인 자금흐름은 국가단위 복지제도의 존립을 무력화시킵니다. 국내법의 규정이 외국의 낯선 규정에 의해 무력화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단계적으로 여러 나라의 상이한 규정을 규합해 일원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김고문〓최근 탈북자가 대량 발생하여 사회적 외교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서독이 아닌 나라로 간 동독 난민을 서독은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슈라이버 전총장〓서독은 헝가리 체코 등 제3국 공관을 찾았던 구동독인을 난민으로 대우했습니다. 결과 헝가리를 통한 동독인의 대량이탈이 일어났고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하여 독일통일의 물꼬를 텄습니다.
▽김고문〓독일의 대학은 대부분 국공립 체제입니다. 미국식의 사립학교 체제와 비교해 독일식이 더 장려할 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슈라이버 전총장〓교육은 국가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국가는 재정지원을 계속하면서 대학의 자율권을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김고문〓유럽 여러 나라들은 통일 독일의 패권주의를 우려하기도 합니다.
▽슈라이버 전총장〓대부분의 독일인은 크고 강력한 독일을 원하지 않습니다. 경제가 우선하는 시대에 이웃 국가에게 경계심과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한다면 독일로서는 손해일 뿐 입니다.
〈정리〓유윤종·김형찬기자〉khc@donga.com
◆대담자 역력
〈슈러이버 전총장〉△독일 출생 △본대 법학박사 △니더작센주 법원판사 △괴팅겐대 교수 △니더작센주 문교부차관 △니더작센주 교육위원회 위원장 △괴팅겐대 총장 △현 괴팅겐대 교수 겸 폴크스바겐장학재단 이사장
〈김학준본사고문〉△서울대 정치학과 졸 △미국 피츠버그대 정치학박사 △피츠버그대 연구조교수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청와대 대변인 △단국대 재단이사장 △현 인천대총장 겸 동아일보 편집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