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대선]메가와티, 性-종교 장벽앞 무릎

  • 입력 1999년 10월 20일 19시 33분


인도네시아 여성 야당지도자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52)가 제도와 종교, 그리고 성(性)의 장벽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대통령 선거에서 눈물을 삼켰다.

6월7일 실시된 총선에서 34%의 지지를 획득, 71년 이후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집권 골카르당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던 메가와티. 최근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나 집권 골카르당의 후보가 나서지 않는 선거에서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역전패. 메가와티는 “여성대통령은 안된다”는 국민협의회(MPR)내 이슬람 보수세력의 지지획득에 실패한 것이다. 50%가 넘는 국민의 높은 지지도 간접선거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메가와티는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맏딸. 인도네시아 독립을 이끈 아버지의 후광 속에 18세까지 대통령 관저에서 곱게 자랐던 그는 66년 수카르노가 당시 군부 실세였던 수하르토에 의해 권좌에서 밀려난 뒤 학생운동가와 야당지도자의 힘든 길을 걷게 됐다. 특히 70년 수카르노가 세상을 떠난 이후 메가와티는 민족학생운동에 몸을 내던졌다. 파자자란대 농업학과 입학과 중퇴, 인도네시아대 심리학과 재입학과 중퇴를 거듭하며 학업은 포기하다시피 했다.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은 83년. 당시 둘밖에 없던 ‘관제 야당’인 인도네시아 민주당(PDI)에 입당해 자카르타지부장을 맡았다. 지지세력을 모은 끝에 93년에는 마침내 당수로 선출됐다.

메가와티가 반(反)수하르토 대열의 정점에 서게 된 것은 수하르토의 ‘자충수’ 때문이었다. 절대 권력자 수하르토는 메가와티가 세력을 키우자 96년 민주당내 어용세력을 동원해 메가와티의 당수직을 박탈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메가와티는 ‘핍박받는 야당 지도자’의 이미지를 굳히면서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게 됐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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