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천년특집]유리에 비친 인간이미지

  • 입력 1999년 10월 24일 19시 54분


유리로 된 거울이 발명된 것은 13세기의 일이었다. 거울은 그 후 곧 화려함과 특권의 상징이 되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가 되었으며, 영적인 삶과 세속적인 삶의 이원성을 상징하는 복잡한 은유가 되었다. 신학에서 거울은 영혼과 천국을 드러내 주는 도구로 생각되었고 마법의 세계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비춰주는 도구가 되었다.

거울은 또한 로맨스의 아름다움과 배신을 드러내 주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에 등장하는 왕자는 마법의 거울을 통해 파미나의 슬픔에 잠긴 얼굴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한편 프레스톤 스터지스의 영화 ‘레이디 이브’에 등장하는 여자 사기꾼은 콤팩트의 거울을 이용해서 멍청할 정도로 정직한 부자인 헨리 폰다를 연구한 다음 그가 자기를 사랑하게 만들 전략을 짠다.

거울은 인간의 추악한 위선을 상징하는 은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제임스 볼드윈은 백인들과 이성애자들이 흑인들과 동성애자들을 거울처럼 이용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자신들이 두려워하고 증오하면서도 왠지 매력을 느끼고 있는 자신들의 숨겨진 일면을 흑인과 동성애자들에게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들이 남자들의 좋은 점만을 확대해서 비춰주는 거울 같은 존재가 되기를 남자들이 바라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거울은 자기발견 자기애 자기혐오 자기확신 자기회의를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정신분석학의 일부 학파에서는 아기들이 생후 약 18개월 무렵쯤 거울 단계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이 시기는 아기가 자신을 엄마와 다른 사회적인 존재로 처음 인식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사악한 계모 왕비가 거울을 향해 뭐라고 중얼거렸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 누구지?” 이 질문에 대해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만을 거울에 비치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개인이 이같은 함정에 빠진다면 무서운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집단, 혹은 한 민족 전체가 자신들의 왜곡된 이미지를 진심으로 껴안기 시작하면 훨씬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 민족의 좋은 점만을 보는 민족은 민족적 자부심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세르비아의 인종청소 같은 커다란 범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구실을 얻을 수도 있다.

우리는 ‘백설공주’의 이야기에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만약 왕비가 자신의 가치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었다면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이미지가 나타났다고 해서 반대세력을 영원히 제거해버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와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지하세계의 범죄자들은 처음에는 아일랜드인이었다가 영화 ‘대부’ 이후 지금까지 줄곧 이탈리아인들로 고정되어 있다. 3대 TV 방송국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거의 전부 백인들이다.

계급차별 여성차별 인종차별 등이 포함되어 있는 20세기 사회문제 목록에 이제는 그릇된 문화적 자만심과 허영심이라는 항목을 추가해야 한다. 21세기를 바라보면서 우리 문화라는 거울 속에서 진정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하겠는가.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millennium/m5/mi

rror―jefferson.html)

▽필자〓마고 제퍼슨(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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