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과도 군사정부를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부 서방 언론은 군사정권이 채택한 새 국명 ‘미얀마’를 수용하지 않고 여전히 ‘버마’로 표기할 정도다.
베트남은 정치발전보다 경제개혁에 역점을 두고 있다.
▼수지여사 힘겨운 투쟁▼
◇미얀마
88년부터 지금까지 헌정이 중단된 상태다. 현재 집권하고 있는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는 과도 군사정부다. 과도정부라지만 벌써 12년째 집권중이다. SLORC는 88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 시위대를 무차별 진압한 뒤 친위 쿠데타로 집권했다.
군사정부는 “새 헌법이 마련되는 즉시 정권을 이양할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안은 93년에 작성되기 시작했으나 올해초까지 고작 3장(章)의 제목만 확정됐을 뿐이다.
미얀마 민주화의 희망은 아웅산 수지. 독립영웅 아웅산장군의 딸이다.
수지가 이끄는 민주국민동맹(NLD)은 90년 총선에서 의회 489석중 392석을 휩쓸었으나 군사정부는 이를 무효화했다. 의회는 소집되지 않았고 수지는 가택 연금됐다. 수지는 이듬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수지에게 평화상을 준 것은 미얀마 군사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었다.
수지의 연금은 95년에 해제됐다. 그러나 연금해제는 외국의 원조와 투자를 얻어내기 위한 제스처였을 뿐 수지의 정치활동은 여전히 제한돼 있다.
미국은 미얀마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고 있으며 유럽 주요국가들도 미얀마와의 모든 접촉을 단절했다. 올 2월 유엔 대표단은 수지와의 대화재개 등 민주화를 전제조건으로 10억달러의 차관제공을 제의했으나 미얀마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국제사회의 압력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정정(政情)에는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재논리에 정치 밀려▼
◇베트남
76년 통일 이후 공산당 1당 지배가 계속되고 있다.
450석의 의회 의원은 직선된다. 그러나 공산당이 의회에 대한 감독권을 갖고 있다. 최고 집행기관은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중앙집행위원회다.
변화의 움직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 정부는 92년 총선부터 처음으로 복수후보 제도를 도입했다. 야당은 없지만 공산당후보가 아닌 후보도 용인한 것. 이에 따라 의원 450명을 뽑는 총선에 602명이 출마해 33명의 비(非)공산당 후보가 당선됐다.
97년 총선에서는 출마자 663명중 비공산당후보가 17%로 늘었다. 선거 결과 비공산당 후보의 약진이 두드러져 이전 의석의 두 배인 66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국민 사이에서는 경제발전 열망이 민주화 욕구를 앞지르고 있다. 공산당 정부도 그런 노선이다. 86년 무오이 공산당 서기장은 ‘도이모이(쇄신)정책’을 채택해 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개혁개방 시책을 폈다. 그 결과 97년 아시아 경제위기 이전까지 베트남은 매년 20% 이상의 수출 신장률을 달성했다.
97년 총선에 따라 구성된 현재의 지도부도 모두 개혁파 인물로 채워졌다. 이들의 임기는 2002년까지다.
베트남은 공산당에 집중된 과다한 권력을 점차 줄여나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경제발전을 위해 공산당의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런 모순을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가 베트남의 과제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