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철〈남한대표단장·건국대교수〉
통일회의의 남측 단장인 백영철(白榮哲·건국대교수·정치학)한국통일포럼회장은 남북간의 유일한 ‘열린 대화창구’인 이 회의를 송두율(宋斗律·독일 뮌스터대)교수와 함께 만든 산파역이자 산 증인이다. 95년 첫회의 직후 통일포럼을 결성하고 이를 이끌어 온 백단장은 통일회의가 5년이나 중단 없이 계속될 수 있었던 원인을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토론의 예절’과 ‘상호주의’라고 꼽았다.
―지난 5년간 변화가 있었다면….
“첫 회의 때는 우리측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북측이 내부적으로 자체 토론을 한 뒤 공식 입장을 전달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도 즉석 토론과 질의답변이 이뤄진다. 토론 주제도 지난 회의까지는 7·4공동성명에서 남북기본합의서에 이르는 통일논의의 공감대조성이 주조(主調)였으나 이번에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의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서로가 민감한 문제를 사전에 논의, 절충하는 예비회담만 하더라도 종전에는 4,5시간씩 걸렸지만 지금은 그렇게 걸리지 않는다.”
―이번 5차 회의를 평가한다면….
“매년 정례화됐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서로의 차이점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극복, 21세기의 새로운 남북협력과 공존의 틀을 마련해야한다는 의지와 방안의 모색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됐다. 이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햇볕정책에 대해 북측 참석자들이 거부감을 보였는데….
“북측은 현 정부의 대북(對北)공존과 평화, 협력정책의 궁극적 목적을 장기적인 체제변화를 유도하려는 정책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즉 표면적 메시지와 달리 실제 함의는 흡수통일적인 요소가 있다는 불신이다. ‘햇볕’ ‘포용정책’등 상대방을 자극하는 용어의 선택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남북당국에 제언이 있다면….
“남측은 선제적인 교류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북측은 이에 경계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 상황이다. 남측은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기보다 일관성 있는 정책을 통해 신뢰를 구축해야 하며 북측도 통일의 ‘선결조건’만 얘기할 게 아니라 통일기반 조성에 필요한 상호 체제인정과 법 제도적 장치의 정비에 나서야 한다. 또한 정치가 교류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되지만 그 틀은 정치가 마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경분리정책보다는 ‘정경병진(竝進)’정책의 추진이 필요하다.”
〈베이징〓특별취재반〉
▼"統一위해 우국지사가 아닌 애국투사 필요한 때"▼
원동연〈북한대표단장·사회정치학회부회장〉
북측 단장 자격으로 통일회의에 세번째 참석한 원동연(元東淵)북한사회정치학회부소장은 북한 내에서 손꼽히는 군축 전문가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평통 서기국 부장을 지내는 등 대남관계에도 정통한 원부소장은 92년 남북기본합의서 작성과정에도 참여했다. 그는 5년째 접어든 통일회의에 대해 “통일을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회의의 의미를 어떻게 보나.
“학자들은 시대의 선각자로 역사발전에 진보적인 역할을 한다. 나라의 통일과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자들이 응당 선도적 역할을 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자들의 어깨에 실린 의미가 무겁다.”
―회의가 ‘꺾어지는 해’인 5년째에 접어들었는데….
“5차례나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학자들의 통일 애국적 일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학자들의 모임이 지상(紙上)공론이나 공담으로 끝나면 안된다. 실천의지가 있어야 한다. 공동견해를 담은 생산물(합의문) 하나 아직까지 못만들고 있는 것은 미흡한 것 아닌가. 하나하나 공통점을 찾는게 민족의 장래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남측 학자들은 당국에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창구인 데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에는 금기시됐던 주한미군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인 것은 남쪽 학자들이 많이 깨우치고 문제점을 바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 아닌가. 북에서 제기했다고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민족을 위해 북에서 내놓든, 남에서 내놓든 긍정적으로 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북측은 ‘햇볕정책’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지만 현대의 금강산사업 등은 햇볕정책의 산물 아닌가.
“북남의 민족문제 해결에 ‘햇볕’이니 ‘포용’이니 하는 표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2500년전 우화(이솝우화)를 적용해 벗긴다느니, 변화시킨다느니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포용정책은 통일지향적이 아니다. 내용에 들어가보면 말과 행동이 다르다.”
―서해공단사업을 어떻게 평가하나.
“민족 공존공영의 입장에서나, 민족의 화합과 단합을 위해서나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불순한 목적에 이용할 속셈을 가진 세력이 적지 않다. 진정 민족에 이바지한다는 자세로 나오면 사업이 잘 될 것으로 본다.”
―남측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통일문제에 있어서는 우국지사가 되지말고 애국투사가 돼야 한다. 앉아서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실천을 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베이징〓특별취재반〉
▼"南 포용정책 공개적 언급으로 北자극 말아야"▼
고병철〈해외대표·미국일리노이대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의 고병철(高秉喆·정치학)교수는 95년(1차), 97년(3차)에 이어 이번으로 통일회의에 세번째 참가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평화체제의 개념에 대해서는 양측간에 다소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평화체제라는 뜻이 서로 다른 이유는….
“미국에서 평화라는 개념은 상당히 안정돼 있다. 군사적인 도발이 없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대감이 해소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에 70%정도 공개된 페리 보고서가 평화의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요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반면 북한의 평화 개념은 적대와 대결의 종식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주한미군 철수’가 중요한 전제조건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객관적 입장에서 남북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한국정부는 포용정책이 북을 변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공개적인 언급이 북한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른 한편 북측은 체제의 특성 때문에 남한의 변화를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 큰 제약요인이다. 하루 빨리 서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이런 회의가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나.
“북측 참가자들을 보면 4자회담의 조정관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남북 군사공동위가 구성될 때 거기에 관여했던 군축전문가도 포함돼 있다. 북한의 대남정책을 집행하는 핵심그룹에 속하는 인사들이다. 내년에는 통일회의가 더욱 의의를 살릴 수 있도록 한반도안에서 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베이징〓특별취재반〉
▼"상호대화 삐걱거리면 언제든 연결고리 될터"▼
남과 북을 연결, 통일회의를 탄생시킨 송두율(宋斗律·독일 뮌스터대)교수는 올해 더욱 감회가 새롭다. 6월말 발생한 연평해전으로 회의가무산위기에빠지자급히평양에 들어가 이번회의를어렵사리성사시켰기 때문이다.
“서로 대화가 안될 때는 제삼자가 나서는 게 낫다.”
송교수는 남북관계에서도 어차피 촉매제가 필요하다며 스스로 남북을 잇는 연결고리로 자임하고 있다.
“남이든 북이든 모두 내 속에 들어 있는 타자(他者)”라고 말하는 송교수는 자신을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말한 황장엽(黃長燁)전노동당비서의 주장에 대해서도 “황씨의 추측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는 91년 북한을 첫 방문한 이래 지금까지 11번이나 북한을 방문했으나 67년 독일 유학을떠난이후로는한번도남쪽땅을밟지못했다.
91년 서울대 사회학과 초청교수로 부름을 받았으나 당시 한국정부가 ‘정부비판’을 문제삼아 입국을 불허함으로써 두 차례나 초청장을 보내온 북한을 먼저 방문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김일성(金日成)주석과도 직접 만나 동유럽의 몰락 원인과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가 문제인물로 낙인찍힌 것은 74년 독일에서 ‘민주사회 건설협의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유신에 반대하는 등 반정부투쟁을 벌였기 때문. 그러나 87년 대통령선거 때 ‘양김(兩金)’이 분열하는 것을 보고는 실망해 ‘조직활동’에서 손을 뗐다는 것.
93년 아들의 군입대문제가 걸리는 바람에 결국 독일국적을 취득했다는 그는 “한국강단에 서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