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혹성탈출’에서 콜라병은 원숭이들의 행성으로 알고 있던 곳이 인류가 멸망한 뒤의 지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유물’이다.
반면 아프리카 오지에서 원시생활을 하고 있는 ‘부시맨’에게 콜라병은 문명사회로의 ‘초대장’이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채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코카콜라병은 디자인의 독창성과 끊임없는 반복성을 통해 20세기인들의 뇌리에 가장 뚜렷이 박힌 상품의 하나가 됐다. 영국의 디자이너 스티븐 베일리는 그 독창성을 “시간을 뛰어넘은 산업디자인의 명품”이라며 “소비상품의 역사상 가장 친숙한 디자인”이라고 극찬했다.
반면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은 그 반복성에서 대량생산과 대량복제라는 20세기 산업사회의 구조를 예리하게 포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세계 190여개국에서 하루에만 대략 5억6000만개씩 소비되는 코카콜라병의 탄생에는 작은 오해가 숨겨져 있다.
오늘날 코카콜라 병의 원형은 1915년 인디애나주 테르 호트의 루트 유리회사 병디자인팀이었던 알렉산더 새뮤얼슨과 얼 알 딘에 의해 고안됐다. 하지만 일반에게 알려졌듯이 당시 미국에서 한창 유행했던 밑이 좁은 주름치마 ‘허블스커트’를 닮았다고 ‘허블스커트병’으로 불렸던 코카콜라병의 아이디어는 스커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당시 코카콜라는 다른 소다음료수들과 별 차이 없이 판매됐기 때문에 진짜 코카콜라 맛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테네시주 채터누가 지역의 코카콜라 보틀러(병공급업자)였던 벤 토머스는 이런 현실을 타파할 묘책으로 ‘캄캄한 곳에서 만져만 봐도 구별할 수 있는 병 모양을 개발할 것’을 요청한다.
코카콜라사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1915년 새로운 병 디자인 공모에 들어가면서 다른 제품과 뚜렷한 차별성을 지닐 것과 기존 병입 시설에 맞을 것이라는 두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루트유리사의 사장이었던 채프먼 루트는 그해 6월 ‘코카콜라는 무엇으로 만드나’라는 질문과 함께 그 재료를 소재로 아이디어를 얻어볼 것을 제안했다.
코카콜라의 주된 재료는 남미에서 나는 코카(Coca)잎과 아프리카에서 나는 콜라(Kola)씨앗. 당시 루트유리공장의 검사관이었던 클라이드 에드워드는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1913년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서 코카와 콜라 항목을 찾았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콜라의 첫머리 철자를 상표 그대로 K가 아닌 C로만 알고있었기 때문에 콜라항목을 찾지 못했다.
때문에 코카 항목 다음에 나오는 코코아 열매 그림을 콜라 열매로 착각하고 기술자인 딘에게 넘겨 새 제품 디자인에 참조하도록 했다.
그래서 딘과 새뮤얼슨이 꼬박 밤을 새가며 만든 첫 디자인은 코카콜라의 재료와는 전혀 상관없이 배부위가 불룩한 곡선형 외형에 세로로 줄무늬 홈이 파인 코코아열매를 빼다 닮은 모양이 됐다. 이 작품은 이후 손으로 잡기 쉽도록 아래부분이 오목하게 들어가면서 여성의 신체곡선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됐다.
그해 11월16일 새뮤얼슨의 이름으로 특허등록을 마친 이 작품은 결국 그 다음해 코카콜라 보틀러 연례회의에서 공식 병디자인으로 선정됐다.
코카콜라측은 당초 새로운 디자인에 대해 144병당 25센트의 로열티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했지만 루트는 오히려 로열티를 종전 다른 병과 같은 5센트로 낮추어서 계약을 했다.
코카콜라 보틀러들이 구형병을 신형으로 바꿀 때 추가부담을 주지 않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신형병 사용량을 대폭 늘리겠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해 코카콜라사는 새로운 병 디자인을 알리며 ‘해적품을 봉쇄했습니다’라는 공격적 광고로 포문을 연뒤 병디자인의 차별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코카콜라 맛의 차별성을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마법의 병 속에는 세계 곳곳을 미국적 생활방식으로 바꿔놓은 ‘지니’도 숨겨져 있었다.
‘코카콜로니즘’(코카콜라식민주의)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이후 코카콜라는 항상 미국식 자본주의 진출의 전초병이었으며 미국적 가치관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선교사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때 아시아 전선에 참가했던 로버스 스콧 미공군대령은 “민주주의 코카콜라 햄버거. 한마디로 우리는 미국적 생활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50년대 햄버거와 함께 세계 여러나라에 전파된 코카콜라는 지구인들의 입맛까지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로 바꿔놓았다. 콜라와 햄버거 등 언제 어디서나 3분안에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는 각 나라의 풍토와 농산물에 기반한 고유 식단을 대신해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식생활 문화로 자리잡았다. 미국식으로 표준화된 패스트푸드문화에서 ‘코크’는 항상 중심 ‘키워드’였다.
이 때문에 코카콜라병은 20세기 최고의 상품 패키지였던 동시에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이념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낸 패키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애틀랜타〓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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