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인 두 사람은 75년 미국 시애틀의 허름한 차고에서 MS를 공동 창업했다. 그러나 그후 이 둘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게이츠가 ‘정보혁명의 전도사’ ‘세계 최대 부자’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영자’ 등 화려한 수식어로 각광받는 동안 앨런은 그저 ‘친구 잘 둔 덕분에 부자된 사람(재산은 400억달러)’정도로 치부됐다.
83년 홉킨스병에 걸려 MS를 떠난 후 그는 세상사를 잊어버린 듯 즐겁게 지냈다.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전세낸 호화 유람선을 타고 휴양지를 누볐으며 패션 모델 제리 홀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90년 이후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근래에 들어서는 ‘디지털 제국’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미국 경제전문 격주간지 포브스가 15일자에서 밝혔다.
앨런은 올들어 145억달러를 들여 ‘차터 커뮤니케이션’ 등 케이블TV 와 인터넷 관련업체 등 9개사를 인수했다. 이렇게 확보한 케이블TV 가입자는 620만명으로 미디어원과 TCI를 인수해 미국 최대 케이블TV업체가 된 AT&T의 가입자에는 못미친다. 그러나 앨런은 MS창업에 맞먹는 독특한 전략을 구사해 AT&T를 제칠 계책을 꾸미고 있다.
앨런의 전략은 이렇다. 케이블망을 통해 가입자에게 보고 즐기는 것은 물론 쇼핑 인터넷 전화 등 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그는 정보통신업체인 RCN과 전자상거래업체인 드러그스토어.콤과 프라이스라인.콤, 메르카타, QVC 등을 인수했다. 또 연예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제일제당이 내놓은 드림웍스 지분을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앨런은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MS사 주식을 팔거나 담보로 제공했다. 이렇게 해서 인수했거나 지분참여한 업체는 모두 125개사에 이른다.
투자성과는 좋다. 그는 지금까지 케이블TV를 뺀 나머지 부문에 모두 12억달러를 투자해 55억달러를 벌었다. 작년말 그가 사들인 3000만달러 어치의 프라이스라인.콤 주식은 6억1500만달러로 불어났다.
그러나 그도 잘못 판단한 적이 있다. 94년 아메리카 온라인(AOL)사의 경영진에 실망해 지분 25%를 1억달러에 팔았다. 이 지분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면 현재 가치는 330억달러에 이른다. 이는 현재 그의 전재산(400억달러)과 맞먹는 것으로 일생일대의 실수였는지 모른다.
〈이희성기자〉lee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