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된 문건은 두 사람이 장벽 붕괴 이튿날인 89년 11월 10일부터 동서독이 통일된 90년 10월 3일까지 나눴던 10여차례의 통화내용을 담은 것으로 ‘다음은 베를린:조지 부시와 독일 통일’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AP통신은 문건의 명칭은 헝가리가 89년 5월2일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있던 철조망 등을 제거한 것을 기념해 그해 5월31일 독일 마인츠에서 부시가 했던 연설제목에서 따온 것이라고 전했다.
콜은 장벽 붕괴 이튿날인 11월10일 부시와의 통화에서 “방금 베를린을 다녀왔다. 거대한 축제를 목격한 것 같다. 장벽이 완전히 열렸다.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런 날이 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 국민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시는 “귀하가 매우 어려운 (장벽붕괴) 문제 등을 처리한 방식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치하했으며 콜은 “바버라여사(부시의 부인)에게도 안부를 전해달라. 크리스마스에는 소시지를 선물하겠다”고 대답했다.
그후 두 사람의 대화는 통일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무사히 정착하기 위해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대통령의 동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대화로 이어졌다.
부시는 89년 11월 17일 “미국이 장벽 붕괴에 대해 너무 흥분한 듯한 인상을 주면 소련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따라서 미국 대통령으로서 베를린 장벽에 나타나 문제를 악화시키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그때까지도 동독에 37만명의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고 AP통신은 분석했다.
콜은 모스크바를 다녀온 직후인 90년 2월 13일 통화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소련의 사회 경제개혁을 강력히 촉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서방의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약속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동유럽 국가와 소련의 관계에 대해 콜은 부시에게 “그(고르바초프)는 소련 문제에 몰두해 있으며 다른 동맹국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고 전했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