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선언 캉드쉬]세계 경제위기 '특급 소방수'

  • 입력 1999년 11월 10일 19시 58분


내년 2월 이전에 조기사임하는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때 한국의 ‘경제총독’으로까지 불렸다. 97년말 외환위기 이후 한동안 한국정부는 그의 처방에 따라 경제를 운영해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프랑스 국립은행총재 출신으로 올해 66세인 그는 90년대 들어 여러 국가에서 빈발한 외환위기의 소방수 역할을 수행하면서 IMF의 위상을 높였다. 그는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의 지도자들과 담판해 한치의 양보없이 강도 높은 긴축정책과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그래서 ‘IMF식 독재’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였다. 특히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는 초긴축과 고금리정책에 따른 유가와 생필품값 폭등으로 국민의 불만이 폭발해 수하르토 장기집권체제를 몰락시키기도 했다.

그가 세번 연임, 최장수 IMF총재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데는 IMF 최대지분국인 미국의 요구에 철저히 순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이외의 IMF회원국들은 “캉드쉬는 미국의 앞잡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IMF의 대(對)러시아 구제금융과 관련해 최근 미국 의회의 거센 비판을 받게 됐다.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IMF의 처방이 잘못됐다는 국제사회의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그의 도중하차를 재촉한 것으로 보인다.

IMF의 아시아 경제위기 처방에 대한 비판은 97년 이후 그를 계속 괴롭혔다. IMF의 자매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은행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수석부총재는 “IMF가 아시아 위기국의 통화를 안정시키기 위해 강요한 고금리 처방은 오히려 경기침체와 대량실업, 기업도산을 불렀다”고 주장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자디쉬 바그와티 교수는 “IMF가 멕시코 경제위기 때 내린 처방을 아시아에 그대로 적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재정적자 규모가 컸던 멕시코에는 초긴축 처방이 적합했지만 일시적 자본유출로 위기가 발생한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에는 초긴축 처방보다 오히려 팽창처방을 내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나올 때마다 IMF는 “올들어 아시아경제가 회복된 것은 고금리와 초긴축 처방 덕분이었다”고 맞섰다. 그러나 IMF 처방과는 반대로 자본통제와 고정환율제 등을 시행한 말레이시아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IMF의 반론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IMF는 9월 연차보고서를 통해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와 고정환율제를 평가했다. 고금리와 초긴축정책이 전지전능한 처방은 아니라는 사실을 IMF가 자인한 셈이다.

비판이 거세지면서 IMF에 대한 개혁요구도 나오고 있다. 로렌스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은 9월말 IMF 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변화된 세계를 위해서는 IMF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캉드쉬총재는 이 연차총회에서 최빈국 부채 1000억달러를 탕감하고 빈곤퇴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던 IMF의 종전 태도와는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작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IMF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특히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IMF를 미국이 계속 주도하려 하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9일 “미국이 캉드쉬의 후임을 결정하는데 적극 개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희성기자·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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