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여야당수 1:1 정책토론 TV생중계

  • 입력 1999년 11월 10일 23시 13분


10일 일본 국회 사상 처음으로 여야 당수 직접토론이 벌어졌다.

이날 중의원에서 집권 자민당총재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는 제1야당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대표를 비롯해 후와 데쓰조(不破哲三)공산당위원장, 도이 다카코(土井たかこ)사민당당수와 차례로 40분간 공방을 벌였다.

NHK방송이 생중계한 이날 토론은 국회심의 활성화를 위해 내년 1월 정기국회부터 도입되는 여야 당수 직접토론을 앞두고 시범적으로 실시됐다.

오부치총리는 9일 총리관저에서 영국하원의 ‘퀘스천 타임(Question Time)’ 비디오를 보면서 2시간 이상 예행연습을 했다. 하토야마대표도 이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토론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론에 앞서 오부치총리는 “야구로 치면 정부는 지금까지 수비만 했는데 당수토론에서는 반론권이 있으니 야당한테 물어볼 것은 확실히 따지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결국은 총리라는 위치 때문인지 수비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26분이 걸린 하토야마와의 토론은 무난히 넘겼지만 후와위원장(9분) 및 도이당수(5분)와의 대결에서는 곤욕을 치렀다.

하토야마대표는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하겠다”고 말문을 연 뒤 “나는 오늘 아침 ‘따뜻한 피자’를 먹었는데 총리는 무엇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오부치총리가 한때 ‘식은 피자’라는 비아냥을 받은 점을 겨냥한 가시돋친 질문이었다.

오부치총리는 “평소처럼 일본식 식사를 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식은 피자가 맛있다고 하던데…”라고 응수했다. 하토야마대표는 “식은 피자가 잠시 맛있기도 했지만 피자가 너무 커지자 다시 맛이 없어졌다”며 자민 자유 공명당 연립정권 발족을 꼬집었다.

후와위원장은 방사능 누출사고를 따진 뒤 “일본에서 원자력추진기관과 규제기관이 각각 어디인가”라고 물었다. 오부치총리는 당황하다가 한참 뒤에야 각료석에서 넘어온 메모를 읽었다. 후와위원장은 “국제조약상 원자력추진기관과 규제기관은 분리하도록 돼 있는데 일본은 통산성과 과학기술청이 추진과 규제를 같이 맡는 모순이 있다”며 “관련자료를 줄 테니 앞으로 잘 검토하라”고 일침을 놓았다.

도이당수는 “총리는 이번 임시국회를 ‘중소기업국회’라고 했는데 중소기업기본법 제출 때 국회출석조차 하지 않았다”고 따졌다. 오부치총리가 “국회에서 요청하면 참석한다”고 하자 도이당수는 “중요하면 요청이 없어도 참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이 끝나자 오부치총리는 충분히 반론하지 못한 점을 의식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날 토론은 각료 전원과 여야의원 50여명이 지켜봤다. 여야의원들은 소속당수의 말에는 박수를, 상대당수의 말에는 야유를 보냈다. 야당은 토론시간이 너무 짧다며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은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됐다. NHK방송은 이날 저녁 7시뉴스에서 톱뉴스로 보도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투명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정부와 의회의 새로운 시도를 지켜보며 나름대로 정치인에 대한 점수를 매겼다.

한 정치평론가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국회 질의답변이 여야 당수간 논전(論戰)으로 변해 앞으로 재미있을 것 같다”며 “일본 민주주의가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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