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중국내에서 활동하는 기업인들은 항상 조마조마했다. 언제 정부의 정책이 바뀔 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계약파기 사례 많아
얼마전 중국 정보산업부가 외국기업의 정보통신분야 투자를 금지하자 베이징(北京)의 대우그룹 관계자는 분통을 터뜨렸다.
“투자해달라고 매달려 들어왔는데 수익이 생길 만하니 나가라는 게 말이 되는가.”
대우는 97년 저장(浙江)성의 이동통신회사인 연합통신(유니컴)에 1억1500만달러를 투자했다.
그후 가입자가 35만명을 넘어서면서 자본을 회수할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국은 ‘중중외(中中外)합작’(중국 2개사와 외국 1개사의 합작)이 규정에 없다며 철수를 요구해온 것이다. 중중외방식은 중국이 외자유치를 위해 도입한 것으로 그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중국측은 보상으로 원금에 은행이자를 더해 갚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동통신 사업 수입금을 현금으로는 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수익금 73%를 현금으로 지불하기로 한 계약마저 무시됐다. 이같은 일은 국제관례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국기업 소송 불리
이처럼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제도와 법규가 없다보니 일은 대부분 행정관청의 자의적인 판단과 재량에 달려있다. 정부 기관의 권유로 투자했다가 상급기관이 틀어버려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중국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이들은 ‘관시(關係)’란 말에 익숙해있다. 관리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다롄(大連)의 한 투자기업인은 “투자금액의 절반이 관시에 들어갔다”고 통탄한다.
중국측 파트너도 말썽이 많다.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에서 중국회사와 합작으로 수도공급용 주물 벨브를 만드는 한 외국인회사는 96년 10월∼98년 6월에 1300만위안(약 18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결과는 480만위안(약 6억7000만원)의 적자였다. 중국측 파트너가 돈을 빼돌리고 장부를 조작한 것이다.
◆구시대 청산 가속도
이렇게 되면 소송도 소용없다. 법 조항이 엉성한데다 ‘가재는 게 편’이기 때문이다. 저장성 닝보(寧波)시 대외경제무역공사에 334만달러의 강재를 수출한 H사는 국제무역위원회에 중재를 신청, 승소했다. 그러나 닝보지방법원이 강제집행을 유보하는 판결을 내려 끝내 대금은 회수하지 못했다.
주룽지총리가 WTO가입을 서둘렀던 것은 이처럼 중국의 국유기업 금융기관 행정기구가 계획경제시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직재편으로 생긴 1000만명의 실업자, 꼬리를 무는 부실기업 도산, 지난해에 이은 디플레 기미 등 문제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외국자본이 대거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겨나고 실업문제가 완화된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외국의 선진기술이 결합되면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수출경쟁력이 높아진다.
수출증가는 내수활성화로 이어져 만성적인 디플레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 이런 성과를 거두려면 중국은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고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틀을 정착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장쩌민(江澤民)주석과 주룽지(朱鎔基)총리가 WTO 가입을 그토록 서둘렀던 것은 바로 개혁의 가속화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