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마디로 한국 정부와 군부가 결정했고 여기에 미국이 동의했으며 당시 주한미군은 모든 과정을 공개했다는 입장이다.
한국 역시 북한의 침투를 막기 위해 한국군 부대가 살포 직전단계에 요청하는 형식을 갖췄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2사단이 최초로 문제를 제기하고 미8군사령관이 주도적으로 세부시행계획을 발전시켰다는 ‘수순’을 강조했다.
국방부는 주한미군 보고서인 ‘식물통제계획 1968’을 근거로 63년부터 미1군단과 2사단이 고엽제를 포함한 제초제 사용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67년 일부 지역에서 시험사용한 뒤 한국 정부와의 협의를 거쳤으므로 고엽제 살포문제를 처음 제기한 건 미국이 분명하다고 부연했다.
양쪽 주장을 종합해볼 때 고엽제 살포가 한미 양국의 합의에 따라 실시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지금 최초 살포 요구의 주체를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 건 앞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피해보상 문제 때문.
미국 호주 뉴질랜드의 경우 베트남전 참전용사 20여만명이 79년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법원 중재로 1억8000만달러의 보상금을 받았다.
한미 양국이 앞으로 연례안보협의회(SCM) 등 각종 회담을 통해 책임 및 배상문제를 논의하겠지만 고엽제에 노출된 장병들은 양국 정부나 제조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고엽제 살포에 68년에만 연인원 2만6639명이 동원됐고 2차 시기인 69년엔 투입인원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중복된 인원을 감안하더라도 피해자가 수천명에 이를 전망이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