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制 존폐 '한국모시기'…19일 유엔 폐지결의안 표결 촉각

  • 입력 1999년 11월 17일 20시 10분


사형제도의 폐지여부를 놓고 아시아 중동지역 국가들과 유럽 중남미지역 국가들이 유엔에서 벌이는 격돌양상이 국제적인 관심사다.

이같은 양대지역 간 격돌은 인권을 앞세운 유럽연합(EU)국가들이 지난달 사회 문화 인권문제를 다루는 유엔 제3위원회에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결의안’을 제출한데서 비롯됐다.

EU국가들은 곧 동조세력 규합에 착수해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70여개국으로부터 동조 서명을 받아냈다.

그러자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아시아 중동국가들이 ‘내정간섭’이라며 사형폐지결의안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 국가들은 중국 일본 싱가포르 인도 이란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역시 70여개국으로부터 동조 서명을 얻어내는데 성공했고 이어 EU가 제출한 결의안을 반박하는 수정안을 16차례에 걸쳐 유엔에 제출했다.

결의안의 수용 여부를 가늠할 유엔 제3위원회의 투표는 188개 유엔 회원국들 대부분이 참석한 가운데 19일 실시된다. 그러나 찬반 양측의 세력이 너무 팽팽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구속력이 없는 권고 수준의 결의안 하나를 놓고 마치 지구촌이 양분되듯 대립하고 있는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시아와 중동지역 국가들은 결의안을 주도하는 유럽국가들이 사형제도를 ‘야만적 행위’로 보고 있고 ‘사형제도 유지국’을 ‘야만국’으로 보는 자문화(自文化)중심주의에 빠져있다고 생각한다.

또 이들 국가들은 유럽국가들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보편주의를 앞세워 다른 문화권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고 믿는다.

결의안 부결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曜)전총리는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와 함께 대표적인 ‘아시아적 가치’의 주창자. 97년 경제위기 도미노로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아시아권 국가들의 반(反)서구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중동의 경우는 이스라엘이 찬성에, 나머지 아랍국들이 반대편에 합류해 평소의 분쟁구도대로 편이 갈렸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찬성 반대 어느 쪽으로도 공개적인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그러나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마지막 투표단계에서는 ‘조용히’ 반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시아권과 유럽지역 국가들은 공개적인 입장표명을 유보한 한국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까지 펴고 있다. 운토 투루넨 주한 핀란드대사는 외교통상부를 두 차례나 방문해 사형제도폐지 결의안에 찬성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맞서 마이클 테오 앵 쳉 주한 싱가포르 대사도 최근 외교부를 방문해 반대표를 던져달라고 신신당부하다시피 했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사형폐지 문제라는 어찌보면 크지 않은 문제를 놓고 전 세계가 양분돼 16차례나 수정안을 제출하는 일은 유엔 사상 매우 보기드문 일”이라며 “서구문화권과 비서구 문화권과의 작은 ‘문명충돌’”이라고 평가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