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L씨(32)도 인터넷 카지노 사이트에 손을 잘못 댔다가 3개월만에 7000달러를 잃었다. 업무상 컴퓨터를 자주 다루는 L씨는 인터넷에서 도박사이트를 찾아낸 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유명호텔이 개설한 사이트에 접속했다.
신용카드 번호와 E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룰렛 블랙잭 바카라 슬롯머신 등 게임을 하면서 도박에 빠졌다. 직장에서도 카지노게임을 하느라 업무는 뒷전이었다. 포커에는 도사급이었지만 인터넷 도박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첫날 200달러를 잃었고 두달만에 2000달러를 날리고서야 인터넷 도박이 사기임을 깨달았다.
인터넷은 도박장까지 가야하는 ‘공간이동’의 번거로움을 없애버렸다. 전화선과 컴퓨터만 있으면 굳이 카지노에 가지 않고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에서 처럼 도박을 즐길 수 있다. 결제는 신용카드를 통해 손쉽게 이뤄진다.
도박사이트의 잠재력은 가히 폭발적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인터넷에 개설된 도박사이트가 비밀 사이트를 포함해 400여개에 이르며 상금 비용 세금 등을 제외하고 도박사이트가 벌어들이는 순수익이 올해 10억달러일 것으로 추정했다. 97년 3억달러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규모이고 2002년 예상수익은 30억달러로 급속한 신장세를 보인다.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 2억5000만명 중 잠재적 인터넷 도박자는 10%인 250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에도 수만명의 이용자가 있는 것으로 짐작되지만 정확한 통계는 없다.
인터넷 도박은 처음에는 포커 경마 룰렛 등 단순한 게임 몇가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스포츠경기를 이용한 도박이 늘어 20여 가지나 될 정도로 다양해졌다.
인터넷에서 ‘카지노’란 검색어만 입력하면 엄청난 수의 사이트가 나타난다. 고객들은 사이트에서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면 곧바로 온라인 도박에 참여할 수 있다. 대부분 한번에 10∼50달러 판돈을 걸기 때문에 자칫 큰 돈을 잃기 십상이다.
최근에는 도박을 법으로 인정한 호주와 카리브해 연안 국가, 중남미 등에서 인터넷 카지노 사업을 공개적으로 추진해 인터넷 이용자들을 유혹한다. 한국인들을 위해 아예 한국어 안내로 운영되는 도박사이트도 상당수이다. 미국 인터넷 카지노사는 한국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10여개국 언어로 사이트를 운영한다.
일반 카지노의 슬롯머신도 확률조작 의혹이 높지만 인터넷 도박은 조작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워 피해가 더 크다. 1등 당첨 확률이 100억분의 1일 정도여서 절대 돈을 딸 수가 없다. 재미로 하는 무료 사이트인 ‘V 베이거스’에서는 돈을 따는데 막상 실제로 판돈을 걸고 하는 카지노 사이트에선 여지없이 돈을 잃고 만다. 무료사이트는 도박유인 창구인 셈이다.
미국에서는 라스베이거스 등에서 도박을 합법화하고 있지만 인터넷 도박은 불법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최근 대형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조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대부분의 인터넷 도박회사들이 미국의 법적용을 받지않는 ‘세금 도피처’인 바하마 등 카리브해 연안에 거점을 두고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는 수법으로 법망을 교묘히 피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61년부터 전선이나 전화를 통한 스포츠 도박을 금지하는 ‘연방유선통신법(FWCA)’이 있지만 인터넷도박을 처벌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98년 뉴욕주 연방검찰은 외국에서 인터넷 스포츠도박을 운영한 6개 회사들이 도박자를 끌어들여 전화와 전선을 불법 사용했다는 이유로 연방법원에 기소했다. 유죄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과 20만 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도박회사들은 “도박을 합법화한 중남미와 카리브해 연안에 설립돼 미국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연방검찰은 회사가 어디에 있든 미국으로부터 현금이 송금되거나 도박을 위해 전화가 걸려오면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어느 회사도 실형을 선고받지 않았고 주법에 따라 가벼운 처벌을 받는 선에서 검찰과 합의했다. 연방유선통신법이 너무 오래되고 낡아 빠져나갈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법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97년 카일 상원의원이 제출한 ‘인터넷도박 금지 법안’은 상원을 통과했지만 하원에 회부되지 못했다. 카지노 업계의 로비도 있었지만 법집행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반론이 많아 다른 수정안이 제출된 상태다.
수정안은 도박사업 관련자가 인터넷 등을 이용해 내기를 하거나 정보제공, 도박 초대를 할 경우 4년 이하의 징역이나 2만달러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초 법안에선 도박참여자도 처벌했지만 수정안에선 도박사업자만 처벌하고 복권 경마는 그대로 인정되는 등 예외조항이 많다.
인터넷도박은 가상공간에서 국경을 넘나들기 때문에 적발이 어렵다. 적발하더라도 자국이 아닌 외국에서 개설한 도박사이트에 참여해 도박을 하면 사이트 이용자를 처벌하기 어렵다. 가짜로 인터넷 주소(도메인)를 개설하면 사용자를 추적하더라도 엉뚱한 사람이 나타나기 일쑤다.
인터넷에서는 신용카드 사기가 빈번해 신용카드로 판돈을 걸었다가 떼이더라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
한국도 인터넷도박을 처벌할 수 있는 별도의 법조항은 아직까지 없다. 형법 246조, 247조의 도박죄와 도박장 개설죄 등으로 인터넷 도박을 처벌할 수도 있지만 도박사이트 이용자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대검 컴퓨터범죄수사반 이광형(李光珩)검사는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인터넷 도박을 적발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인터넷도박과 전자상거래 사기 등 정보화의 역기능을 방지할 수 있는 법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도박중독증?▼
처음부터 도박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재미로 시작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박의 늪에 빠지면 헤어나기가 어렵다.
도박에 중독되면 성격까지도 변한다. 내성적이고 가정적이란 소리를 듣던 사람도 도박 중독증에 걸리면 강한 승부욕에 사로잡힌다. 무기력 우유부단 불안 초조 난폭 등 대인관계가 연속적으로 파괴되기도 한다. 도박중독증 환자의 75%가 우울 증세를 보인다. 도박 중독증은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자 자녀 부모 등 가족까지도 불안증에 걸리게 한다. 종국에는 가정파탄과 각종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류인균(柳仁均)교수는 “과도한 인터넷사용 등 사이버 중독증세가 인터넷도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인터넷에 너무 깊게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박 중독증 치료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는 한국단도박친목모임(02―521―2141)이 대표적이다.
도박중독 경험이 있는 회원들이 모여 상담 활동을 하고 도박에서 손을 끊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인터넷 홈페이지(www.catholic.or.kr/가톨릭광장/기관단체/단도박친목모임)도 운영한다.
전국 26개 지부에 500여명의 회원들이 가입해 있다. 이들은 회원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방배동 박’ 등 철저하게 익명으로 통한다.
한국단도박친목모임 사무국장 이모씨는 “명절때 가족끼리 고스톱을 치는 등 불건전한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잠재적 도박중독자를 기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도박은 마약이나 알코올보다 더 끊기 어려워 100명중 2명만 치유효과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인철기자〉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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