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최근 러시아계 체첸주민 미하일 카쉬푸린(76)의 개인사를 통해 체첸전쟁의 비극을 전했다.
카쉬푸린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독일과의 전투에서 많은 공로를 세워 구소련군으로부터 13개의 훈포장을 받은 전쟁영웅. 체첸은 현재의 러시아는 물론 구소련 당시에도 자치공화국이었다.
카쉬푸린은 러시아가 체첸을 침공하기 전 그로즈니 남부에 있는 자택 거실에 훈포장을 걸어두고 자랑스러워하며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체첸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부인과 함께 가축을 키우는 것이 소일거리였다. 그는 러시아군이 9월초 공습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전쟁이 자신에게도 견디기 힘든 비극을 초래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폭탄이 민간지역에도 쏟아져 전기 수도 식량 공급이 끊겼고 주민들은 지하실로 대피해 겨우 연명하는 상황이 됐다.
체첸군도 주민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체첸군은 카쉬푸린의 이웃 가운데 불구자까지 징발해 참호 파는 일을 시켰다. 카쉬푸린은 너무 늙어 징발되지는 않았다.
11월27일은 그의 인생이 박살난 날이다. 폭격기들이 새까맣게 몰려와 미사일과 폭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가 사는 달나야 마을의 가옥 40여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부엌에서 일하던 카쉬푸린의 아내도 처참하게 숨졌다.
그도 심한 상처를 입고 지하실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다 이웃 주민에게 발견됐다. 며칠 뒤 그는 썰매와 승용차를 얻어타고 체첸 인근 잉구셰티야공화국으로 탈출했다.
그는 러시아 공군기지가 있는 모즈도크의 한 민가에서 러시아측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
폭격으로 ‘위대한 애국 전쟁(대독일전쟁)’ 참전 증명서와 훈포장을 잃어버린 카쉬푸린은 러시아 정부에 전쟁영웅 대접을 해달라는 요청을 할 수도 없다며 탄식하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전했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