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밀레니엄 휴가 '17일간의 음주기간'

  • 입력 1999년 12월 28일 19시 47분


길고 요란하기로 유명한 러시아의 연말연시 연휴가 새 천년을 맞는 올해에는 ‘밀레니엄급’으로 격이 높아졌다.

성탄절(12월25일)에서 새해연휴(1월1일∼4일)를 거쳐 슬라브정교 성탄절(1월7일)까지 계속 쉬는 러시아의 독특한 관습 덕분에 25일부터 시작된 올해 연말연시 연휴는 내년 1월10일까지 계속된다.

이 기간 전체가 법적으로 인정된 휴가는 아니지만 개인기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관공서가 휴무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상 러시아 전체가 일손을 놓는다. 올해는 Y2K(컴퓨터 2000년 연도인식오류)문제를 핑계로 대부분의 은행들이 24일부터 문을 닫아 경제활동도 사실상 정지된 상태다.

이때문에 러시아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무려 17일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불만이 대단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길고 긴 연휴가 낭비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축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며 만족한 표정이다.

러시아인들은 연휴를 조용히 쉬면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면서 보낸다. 집이나 다차(교외의 별장) 바냐(러시아식 사우나)는 물론 거리, 심지어는 추운 시베리아 숲속에서까지 술판이 벌어진다. 시골에서는 사우나에서 벌거벗고 보드카를 마시다가 밖으로 나와 눈밭을 뒹굴거나 얼음을 깨고 강물에 뛰어드는 러시아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24일 러시아의 새해 연휴를 ‘15일간의 음주기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심지어 체첸전에 참전한 장병들에게도 새해를 맞아 1인당 50g의 보드카와 소금에 절인 오이가 특별 지급될 예정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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