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 4대국 21세기 비전]일본/국제정치 주도 야망

  • 입력 1999년 12월 31일 19시 05분


《인류의 발전을 주도하는 선진국들은 21세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그들의 목표는 무엇이며 어떤 계획을 세웠을까. 21세기 세계의 판세를 가늠하게 하는 미국 일본 유럽 등 현재의 선진국과 잠재적 선진국 중국의 장기 청사진을 취재했다.》

일본의 21세기는 ‘20세기의 족쇄’를 끊어내자는 ‘보통국가론’에서 시작한다.

이오키베 마고토(五百旗頭眞) 고베(神戶)대교수는 “일본인에게 20세기 최대의 사건은 일본의 부침 자체”라고 진단했다. 20세기 초 동양에서는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일본은 1945년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침몰했다. 끝장인가 하고 생각했으나 다시 경제대국으로 일어섰다.

일본에 남겨진 가장 큰 고민이 ‘과거사의 굴레’다. 보통국가론은 침략국가라는 죄의식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보통국가 일본’은 곧 ‘잘 사는 초강대국’을 의미하기도 한다. 막강한 경제력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대국으로 부상하자는 것이 일본의 21세기 청사진이다.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자문기관인 ‘21세기 일본의 구상’은 지난해 8월 일본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이 중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일본’ 부분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일(美日)동맹을 중시하고 아시아태평양공동체를 지향한다. 국제안전보장상의 역할을 포함해 국익을 재정의해야 한다.”

‘국익 재정의’는 과거의 굴레를 끊고 세계를 주도하는 일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의 점잖은 표현이다. ‘새로운 일본을 만드는 국민회의’라는 민간단체는 이를 ‘헌법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검토’라고 직설적으로 풀이했다.

헌법개정에 앞서 이미 일본은 초강대국으로 가는 길을 닦고 있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과 엔의 기축통화화,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및 정부개발원조(ODA)확대, 지역분쟁 해결을 위한 개입 증대 등을 위한 노력이 그것이다.

일본은 이미 군사대국이다. 세계 3위의 방위예산에 최첨단기술로 무장한 막강한 자위대를 보유하고 있다. 21세기 일본은 미일 안보조약의 틀을 중시하면서 유사법제정비 무기현대화 등을 통해 독자적인 안전장치를 강화해 나갈 것임에 틀림없다.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아시아 맹주론’도 일본의 야망과 무관하지 않다.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도쿄(東京)대교수는 21세기 일본외교의4대원칙으로 △자유와 민주주의 중시 △아시아국가와의 관계강화 △세계질서 유지를 위한 책임 분담 △문화의 다원성 존중 등을 꼽았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덩치에 맞는 국제적 역할을 하라는 주문이다.

일본이 커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맞닥뜨릴 문제가 미국과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이다.

이다 쓰네오(飯田經夫) 자부(中部)대교수는 14명의 석학이 쓴 ‘새로운 일본의 틀―21세기의 국가상을 찾아서’라는 책에서 ‘탈미(脫美)’를 주장했다. 그는 “탈미는 반미(反美)나 혐미(嫌美)와는 다르다”고 전제하면서 “일본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미국추종만으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21세기에 일본의 우방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적대국이 될 것인가도 큰 변수다. 현재는 중국이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주장이 주류다.

그러나 노다 노부오(野田宣雄) 난잔(南山)대교수는 ‘제국(帝國)의 시대’에 대비해 일본은 아시아를 이끌어 나갈 구상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일본이라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자고령화(少子高齡化·어린이가 줄고 노인이 느는 현상)로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국가전체가 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50년 이상 지속된 평화로 인해 젊은이들의 국가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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