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은 누구?]경제위기-건강악화로 사임압력 시달려

  • 입력 1999년 12월 31일 21시 19분


‘세기말 깜짝쇼’를 연출하며 사임한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대통령(68)은 1991년 반동쿠데타로 구소련이 위기에 빠졌을 때 쿠데타를 좌절시킨 주역이 되면서 구소련 최고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탱크 위에 올라가는 강심장을 보여 러시아 국민의 신뢰를 획득한 그의 집권 8년은 그야말로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92년 1월 러시아연방의 대통령이 된 옐친은 이후 가히 ‘황제(차르)’수준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두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96년 11월 심장수술을 받은 뒤 옐친은 늘 건강문제 때문에 시달렸다. 신장이상, 허리 디스크수술, 만성적인 귀 감염, 과음으로 인한 간경변 등이 그를 덮쳐 ‘부상병동’이라는 달갑잖은 별명까지 얻었다. 옐친은 93년 10월 보수파 의원들이 주도한 의사당 농성을 탱크포를 동원해 해산하면서 자신의 집권을 도운 개혁파를 멀리하고 권위주의적 대통령으로 변해 갔다. 96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알렉산드르 레베드와 연합함으로써 공산당 후보의 집권을 막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98년 8월 러시아를 덮친 금융위기는 러시아경제를 피폐화시켰고 옐친에 대한 사임압력을 가중시켰다.

85년 4월에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건설부장(장관)이 돼 중앙무대에 진출한 옐친은 같은 해 12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지원으로 모스크바 시당위원회 제1서기가 됐다. 그러나 87년 고르바초프의 10월혁명 70주년 기념사 초안을 조목조목 반박함으로써 그의 눈밖에 나 한직으로 밀려났다가 89년3월 소련 역사상 최초로 복수후보 경선으로 실시된 소련인민대표회의 대의원선거에서 모스크바 지역구에서 출마해 89.6%의 전국 최고득표율로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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