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미국에서 수여되는 과학과 공학 박사학위의 3분의 1 이상을 외국인이 취득하기 때문에 미국은 외국인 박사학위소지자들을 가급적 붙잡아두려 한다. 한국인의 낮은 미국잔류비율은 한국에는 고무적이지만 미국에는 경계감을 줄 만한 것이었다.
미국이 이처럼 사소해보이는 영역까지 조사하는 것은 미국의 최대 자산이 ‘머리’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97년에 영화 음반 책 소프트웨어 광고 등 저작권(Copyright)을 바탕으로 한 제품과 용역의 수출로 668억5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자동차 자동차부품 항공기 농산품 등 어느 단일분야보다도 많은 액수였다.
미국의 저작권 산업은 77년부터 97년까지 매년 6.3%씩 급성장했다. 같은 기간 미국 경제의 연평균성장률 2.7%의 두 배를 넘는다. 특히 저작권 관련 수출은 93년 이후 매년 10%대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다른 ‘머리 상품’인 특허에서도 미국의 우위는 두드러진다. 일단 특허출원은 미국으로 집중된다. 미국이 세계최대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96년 미국 특허청에서 인정된 11만건의 특허 중 무려 55%인 6만1000건을 미국이 차지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97년 미국의 연구개발투자비는 전세계 연구개발투자비의 44%를 차지했다. 그만큼 연구개발투자를 많이 한다. 지금도 IBM은 하루 10건씩, 장거리전화회사 AT&T가 운영하는 벨 연구소는 하루 6, 7건씩 특허를 인정받는다. 이를 위해 AT&T는 전체 매출액의 9%, 세계최대 소프트웨어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는 무려 17%를 연구개발비로 쓴다.
미국 산업연구소(IRI)는 최근 보고서에서 단순히 호기심을 추구하거나 우연히 시도하다가 새로운 발명품이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고 지적했다.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한 가지 제품을 만드는 데 평균 3000가지 이상의 아이디어가 모여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
이렇게 해서 나온 새로운 제품도 몇 년을 가지 못한다. 미국 경쟁력위원회(Council on Competitiveness)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제품의 평균기술주기가 4년도 안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밝혔다.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들여 몇 년밖에 쓰지 못하는 기술을 누가 개발하려 할까. 적어도 미국만은 개발하려 한다. 오히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IRI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미국 연방정부의 연구개발예산은 200억달러선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으나 기업들은 연구개발투자비를 71%나 증액해 지난해에는 무려 1660억달러를 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비도 94년 60억달러에서 지난해 109억달러(추산치)로 늘어났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식기반 경제로 급속히 탈바꿈하고 있다는 신호들이다. 미국의 기술지배에 제동이 걸리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美 특허 작년 15만건…100년새 6배 증가▼
20세기에 미국 인구는 1900년 7500여만명에서 1999년 2억6000여만명으로 세배 남짓 늘었다. 특허건수는 2만5000여건에서 약 15만건으로 여섯배나 늘었다. 특허건수의 증가속도가 인구증가속도를 두배나 앞지른 셈이다.
이는 전기시대를 연 토머스 에디슨(1847∼1931)과 같은 위대한 발명가 한 두명 대신에 이름없는 무수한 발명가들이 미국 경제의 초석이 돼왔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의 노력은 발명품을 상품화한 기업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미국경제는 이처럼 새로운 발명품과 아이디어를 상업화하는 데 성공한 기업들의 역사다.
1939년 데이비드 패커드와 빌 휴렛은 오디오 오실레이터(음성 발진기)로 휴렛-패커드 회사를 창업했다.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는 메모리 칩으로 1968년 인텔을 창업해 훗날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1976년에 창업한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대형 컴퓨터만 생산하던 시대에 개인용 컴퓨터(PC)를 들고 나와 IBM의 아성을 뒤흔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70년대 무료로 제공되는 소프트웨어에 지적 재산권의 개념을 도입해 돈을 받고 팔면서 기업을 일으켰다. 그리고 PC운영체계를 IBM에 라이센스를 인정받고 팔면서 결정적인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인터넷은 1969년 미 국방부 첨단연구프로젝트국(ARPA)의 밥 테일러가 개발한 ARPANET이 모태가 됐다. 그러나 지금의 인터넷이 있기까지는 인터넷 언어인 월드와이드웹을 개발한 영국 과학자 팀 버너스-리와 웹브라우저를 개발한 미국인 마크 앤드레슨 등 여러 사람을 거쳐야 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