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이면서 경제학자인 그는 1973년 모스크바 주재 칠레대사로 내정됐으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는 바람에 부임하지 못했다. 라고스는 쿠데타 발생 직후 잠깐 수감생활을 한 뒤 석방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1980년대 초반 칠레로 돌아온 라고스는 야당인 민주연맹 총재로 정계에 복귀했으며 1989년 상원의원을 거쳐 1992년 민선 정권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라고스는 정계복귀 이후 칠레 군정의 인권유린 행위와 신자유주의 경향의 경제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칠레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라고스는 최근 보수적인 여성유권자를 지지계층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고 온건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유세 도중 그는 “아옌데 시절의 일은 과거지사이며 우리는 새로운 21세기에 접어들었다”며 아옌데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는 또 아옌데의 국유화 정책도 반대했다. 덕분에 라고스는 미국 월가의 투자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신임 대통령으로서 라고스가 직면한 최대 문제는 경제난. 군사독재 시절 매년 6∼7%의 경제성장과 낮은 인플레를 누려왔던 칠레는 최근 들어 20년 만에 최악의 경기침체에 빠졌다. 빈부격차가 확대됐고 치안도 불안해졌다.
경제난으로 군정시절에 대한 향수가 일면서 피노체트의 보좌관을 지냈던 보수우익연합 야당 칠레동맹의 호아킨 라빈후보가 선전, 라고스는 결선투표 끝에 어렵게 대통령이 됐다.
<이희성기자> lee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