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시절 독일 군수업체 티센사로부터 200만마르크(약 11억원)의 비자금을 받은 사실은 시인했으나 기부자의 이름 공개를 거부해왔다. 그는 이날 기민당 집행위원회가 기부자 신원을 공개하든지 아니면 당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하자 명예총재직 사퇴를 택했다.
콜은 98년 총선에서 사민당에 패할 때까지 총리로 16년, 기민당 당수로 25년을 재임했다. 콜은 98년 10월 당수직에서 사임한 뒤에도 명예당수로서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나 이제 평의원으로서 검찰 수사와 의회 조사를 받게 됐다. 콜은 현재 전국구 연방 하원의원이며 임기는 2002년까지다. 콜은 이날 하원의원직 사퇴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의원직을 사퇴하면 불체포특권 등 면책특권이 박탈된다.
그는 성명을 통해 “재정적으로 기민당의 활동을 도와준 몇몇 사람들에게 한 약속을 깰 수 없다”며 “명예당수 사임결정도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기민당원으로서 50년동안 일했으며 기민당은 나의 정치적 고향이었고 현재도 고향”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19일 콜의 기민당 명예당수직 사임은 그가 독일 통일과 유러화 도입 추진 등 현대 유럽정치사에 남긴 공적들을 뒤로 하고 은퇴로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콜과 같은 문제로 사임 압력을 받아온 볼프강 쇼이블레 기민당 당수는 당 집행위원회에서 신임을 재확인받아 당수직을 유지하게 됐다. 쇼이블레가 신임을 재확인받은 것은 기민당의 신(新)당권파가 콜을 중심으로 하는 구(舊)당권파와의 투쟁에서 승리한 것을 뜻한다고 독일 언론매체들이 풀이했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기민당 집행위가 쇼이블레를 신임했다기보다는 그를 대체할 인물을 찾지 못해 유임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4월 기민당 전당대회때 당수가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권기태기자·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