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뇌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미국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16개국.
우리와 같은 유교문화권으로 신체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일본도 1998년 6월 ‘장기의 이식에 관한 법률’에 뇌사에 대한 규정을 신설, 뇌사로 판정받은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적출할 수 있는 길을 텄다. 대만은 일본과 우리보다 훨씬 빠른 1976년 뇌사를 인정했다.
뇌사를 처음으로 인정한 나라는 핀란드. 국민보건국이 1971년 ‘시체조직의 적출에 관한 훈령’을 내놓아 뇌사를 인정했다.
미국은 1968년 장기기증을 합법화했고 1983년 미 대통령위원회가 뇌사를 인정하는 ‘통일사망판정법’을 마련, 각 주가 이를 채용하도록 권고했다. 현재 35개 주가 입법화했으며 나머지 주는 판례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또 1977년 장기분배기구(UNOS)라는 전국 네트워크를 설립, 장기를 확보하고 있으며 조직 적합성 검사 및 제공자와 수혜자의 연결업무도 맡고 있다.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는 법률상 뇌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없어 사실상 뇌사를 인정하고 있다.
장기기증과 관련해 미국 영국 독일은 가족이 허락하거나 뇌사자가 사전에 의사를 밝힌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뇌사판정제도도 나라마다 다른데 일본은 환자가 뇌사상태에 들어간 이후 최소 6시간이 경과하고 2명 이상의 의사가 동의해야만 사망으로 판정할 수 있다. 대만은 최소 12시간이 경과하고 3명 이상의 의사가 동의해야 한다.
<이병기기자>watchdog@donga.com
▼의료계에 미칠 영향▼
9일부터 뇌사가 공식인정되는데 대해 의료계에서는 “장기이식수술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면서도 “그러나 시스템의 미비로 인해 당장 수술이 활발히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뇌사가 합법화되지 않은 지금도 뇌사자 장기이식은 해마다 신장 1000여건, 간 100여건, 심장 100여건, 췌장 10여건, 폐 한두건이 이뤄지고 있다. 장기이식이 아니면 생명을 구할 수 없는 환자 수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지금까지 각 병원에서는 뇌사자와 환자 정보를 따로 관리하며 ‘알음알음으로’ 장기를 구해 이식수술을 해왔다.
뇌사가 합법화되면서 장기수혜자와 공여자의 정보가 통합관리되는 국립의료원 산하 대한장기이식정보센터(KONOS)가 출범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행을 일주일 앞둔 현재 KONOS 컴퓨터의 정보망은 텅 빈 상태다.
서울중앙병원 장기이식센터 한덕종(韓德鍾·일반외과)소장은 “1일 KONOS시스템이 오픈됐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지금 당장 시스템을 가동하더라도 9일이나 10일에 생기는 뇌사자의 장기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복잡한 행정절차로 인해 장기이식이 ‘제때’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뇌사판정위원회가 뇌사판정을 하고, 기증자와 수혜자의 조직검사를 거쳐 적출, 이송된 장기를 각 의료기관이 이식수술하기까지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적출된 장기의 ‘신선도’가 떨어져 수술성공률이 낮아지거나 수술후 환자의 생존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려대 의사법학연구소 주호노(朱昊魯)연구교수는 “뇌사가 합법화된 일본도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시행 초기 장기기증 건수와 이식수술 건수가 오히려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고난도의 장기이식수술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모자라 신장이식수술을 제외한 그 밖의 장기이식수술 건수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주교수는 “기본적인 토양이 마련된 만큼 이 분야의 의술은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