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간단한 법이 전후(戰後) 50년 이상 일본 교육의 기둥이었다는 것도 신기하다. 고도성장으로 질주하느라 법과 교육현장의 괴리를 따질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일본은 달라졌다. 교육개혁을 하지 않으면 국가의 장래가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지금까지 교육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실천의지가 강하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는 지난달 28일 정기국회 개회에 즈음한 시정연설에서 두가지 중점목표를 제시했다. 하나가 ‘교육입국’, 또 하나가 ‘과학기술창조입국’이었다. 그는 “교육개혁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것을 맹세한다”고까지 했다.
최근 오부치총리는 경제 노동 예술 문화 인문과학 자연과학 스포츠 청소년계 등 10개 분야 전문가 및 유명인 159명에게 이례적인 편지를 보냈다. 2000∼3000자로 ‘교육개혁방안에 관한 논문’을 써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내각에는 ‘교육개혁에 관한 의견 공모계’를 설치, 전화 팩스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의 의견도 듣고 있다.
교육개혁은 지난해 10월 자민 자유 공명당의 3당 연립 당시의 합의사항이기도 하다. 그 때 3당은 ‘교육개혁국민회의’를 설치해 교육전반에 대한 개혁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현재 위원을 인선중이며 내달 발족할 예정. 이 회의가 어떤 의견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일본 교육계에 ‘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문부상은 문부상 자문기관인 중앙교육심의회에 교육기본법 개정여부를 포함해 전후교육의 바람직한 모습을 논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에서 교육기본법 개정은 전후교육의 발전적 청산 및 새로운 시대의 모색이라는 큰 의미를 지닌다. 이 법에 새로 들어갈 내용은 일본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자민당 내에서는 벌써 ‘애국심’과 ‘전통의 중요성’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4월에는 도쿄(東京)에서 서방선진7개국(G7) 교육장관회의가 열린다. G7정상회담에 앞서 외상이나 재무장관 회의가 열리는 것이 관례지만 교육장관회의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교육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열의가 높다.
일본교육이 어느 쪽으로 가려는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암중모색단계다. 그러나 대체로 △자율화 △국제화 △개성화 △다양화를 지향하고 있다.
오부치총리는 국회연설에서 “일본은 지금까지 조직이나 집단의 조화를 우선해왔으나 앞으로는 개성이 넘치는 인재가 많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창조적 인재 육성에 의욕을 나타냈다. 또한 영어와 인터넷의 습득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에 나온 교육개혁안 중에서는 총리 자문기관인 ‘21세기 일본의 구상’간담회의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간담회는 교육의 균질성과 획일성을 타파하는 것을 교육개혁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누구나 똑같은 내용을, 똑같은 시간에 배우는 것은 낭비라는 것이다. 교육을 ‘의무교육’과 ‘서비스교육’으로 나눠 의무교육은 철저히 시키되 학습능력이 빠른 학생에게는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교육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간담회는 초중고교 교육과정을 현재의 5분의 3 정도로, 공통 수업일수도 주 3일로 대폭 줄이라고 제안했다. 주 3일간의 수업을 이해하지 못한 학생은 나머지 이틀간 보충수업을 하고, 전부 이해한 학생은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배우라는 것이다.
간담회는 이밖에 △영어의 제2공용어화 검토 △가정교육의 강화 △대학의 국제경쟁력강화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다시 배울 수 있는 복선형 교육제도 도입 등을 제시했다.
일본 교육개혁의 지향점은 이렇게 높다. 그러나 일본교육의 현실은 해묵은 과제들을 그대로 안고 있다. 학급붕괴, 등교거부, 학력저하, 국가관 약화, 교사의 질 저하, 입시위주의 교육, 학력중심의 사회구조 등이 그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국제화를 향한 교육개혁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초중학교는 2002년부터 전면적으로, 고교는 2003년 1학년부터 점진적으로 새로운 교육과정을 실시한다. 졸업에 필요한 이수단위를 줄이면서 주 5일 수업제를 도입한다. 그렇게 해서 생긴 여유시간은 재량으로 자유롭게 이용하거나 선택과목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런 새 교육과정의 성패가 일본 교육개혁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