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더 왜 물러났나]女당수 내세워 극우이미지 희석

  • 입력 2000년 2월 29일 19시 10분


외르크 하이더 오스트리아 극우 자유당 당수가 사퇴한다고 발표한 28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있었던 유럽연합(EU) 국방장관 회담 오찬에서 벨기에 대표는 일부러 점심을 굶었다.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소속 허버트 샤이브너 국방장관이 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파시스트하고는 밥도 같이 먹기 싫다는 뜻이었다.

오스트리아 자유당과 인민당이 2월 4일 연정을 출범시킨 뒤 한달이 다 돼가지만 EU 각국의 오스트리아 정권에 대한 외교적 제재와 적대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더가 1986년부터 맡아 온 당수직을 전격적으로 포기한 것은 오스트리아 연립정부를 고립상태에서 끌어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외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자유당이나 연정 내에서 하이더의 영향력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하이더도 “당수는 아니지만 당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카린티아 주지사직도 계속 맡고 있다. 자유당의 한 관계자도 “하이더는 여전히 당내 1인자”라고 말했다.

제임스 루빈 미 국무부 대변인이 “자유당이 연정 파트너로 있는 한 우리의 우려는 변함없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스트리아의 야당인 사민당의 알프레드 구젠바우어 당수는 “하이더의 사퇴는 극우연정에 쏟아지는 비난을 모면하려는 눈가림”이라고 비판했다.

하이더의 후임 리스 파서 신임 자유당 당수는 ‘하이더의 만년필’로 불릴 정도로 측근 중의 측근이다. 파서는 비교적 온건한 성향이지만 하이더의 정책자문을 하다가 1996년 부당수가 됐으며 연정 출범 때 부총리로 기용됐다.

오스트리아 정치평론가들은 하이더가 파서를 내세운 것은 극우 이미지를 좀더 부드럽고 여성적으로 비치게 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며 그가 ‘섭정’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유당은 지난해 10월 3일 총선에서 원내 제2당이 됨으로써 극우정당으로서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인민당과 연정을 하게 됐다. 미국 이스라엘 EU 등은 독일 나치 정책을 찬양하고 인종차별 행태를 보여온 자유당의 연정탈퇴를 요구했고 오스트리아에서도 극우 연정반대 시위가 잇따랐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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