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섬' 대대적 공사▼
물에서 솟아오른 선두(船頭)처럼, 섬의 뾰족한 앞 부분에 자리잡은 보데박물관은 3만점에 이르는 파피루스 컬렉션을 비롯해 이집트 미술품 소장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공사를 하느라 일부 구역이 폐쇄돼 있었다. 박물관 앞에는 ‘보수공사 후 2001년부터 18세기 기독교 시대의 예술품 전시가 예정돼 있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또 이 섬의 신박물관은 아예 문을 닫고 보수공사 중.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북서쪽 코너가 부서져나간 건물이 수 십 년 동안 그대로 방치돼 있다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에야 복구 공사가 시작됐다.
‘박물관의 섬’에서 슈로스 다리를 건너 운터 덴 린덴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보이는 독일 역사박물관 역시 ‘공사 중’. 통일된 지 10년째인데도 왜 이렇게 공사 중인 박물관들이 많을까. 방문객에겐 의아한 일이지만 독일 연방정부 총리실 산하 문화언론국의 만프레드 아커만 국장은 당연하다는 듯 “박물관들의 완전 복구는 20년쯤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재정적 어려움도 있겠지만, 구 동독 지역에서 최상급 문화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문화유적들이 거의 방치돼 있던 상태라 복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박물관의 보수와 복원 비용은 연방정부와 베를린 주 정부가 절반씩 부담한다. 연방정부가 ‘박물관의 섬’ 뿐 아니라 구 동베를린 지역 문화재와 기념물들의 보수, 복원을 위해 통일 초기인 91∼93년 지출한 돈은 2억1400만 마르크(약1252억원). 96∼99년에도 6000만 마르크(351억원)를 추가 지원했다.
독일의 문화정책은 각 지방 정부의 몫이지만 통일 이후 구 동독 지역의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사업만큼은 연방정부가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직접 시행해왔다. 연방정부가 91∼93년 3년 동안 구 동독 지역 전체의 문화재 보수와 기념물 보존, 교회 건축 후원 등에 들인 돈은 30억 마르크(1조7550억원). 지난해에도 같은 사업에 17억 마르크(9945억원)를 지출했다.
▼'바이마르 부활' 성공사례▼
지난해 유럽연합이 ‘유럽의 문화도시’로 선정했던 바이마르의 부활은 가장 성공적인 문화유산 복원사례다. 91년 공익재단인 ‘바이마르 클래식재단’이 창설됐고, 연방 정부가 이 재단이 지출하는 비용의 50%를 부담하면서 국립 괴테 박물관과 실러 박물관, 대공비 안나-아말리아 도서관, 괴테 문서보관소, 실러 문서보관소 등을 복원했다. 바이마르는 독일의 각 주가운데 연방정부가 집중적으로 후원하는 ‘영구 지원’ 대상.
그러나 문화유산 복원의 가장 큰 문제는 형평성. 구 서독지역의 경우 문화관련 지출액 가운데 50%는 시, 40%는 주, 10%는 연방정부에서 부담하는 반면 구 동독지역의 경우 재정이 어려운 주가 많아 평균 30∼40%를 시 정부에서 부담하고 60∼70%를 연방정부에서 부담하고 있다.
아커만 국장은 “날이 갈수록 문화관련 예산이 줄어드는 추세인 것이 문제”라면서도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관객의 무관심”이라고 지적했다. 동독 주민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문화재 복원에 대한 무관심이 엷어지는 것이 복원 그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지역적 소재를 떠나 독일 전체의 문화재와 오랜 전통을 지닌 문화유산은 독일의 것일 뿐만 아니라 유럽의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우엔교회 재건운동▼
독일 전역의 문화재 복원 사업 가운데 드레스덴의 프라우엔 교회 재건은 독일에서 통일과 재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과업이다.
구 동독 지역의 문화재 보수와 복원은 모두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지만, 이 교회의 재건은 예외적으로 민간 단체가 모금운동을 통해 주도하고 있다. 전체 2억5000만 마르크(1463억원)의 복원 비용 중 절반은 연방정부의 지원으로, 나머지 절반은 민간단체의 모금으로 충당된다.
프라우엔 교회는 2차 세계대전 이전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시가지였던 노이마르크트 광장에 들어선, 직경 23.5m의 큰 돔을 지녔던 교회. 건축하는데 6118일(16년9개월)이나 걸렸다는 역사적인 건물이지만 2차 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하룻밤만에 파괴됐다. 독일이 동, 서독으로 분단된 이후 동독 지역에 속해있던 이 교회는 정부의 종교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으로 건축인가가 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건축 자재와 인부 동원조차 금지돼 폐허로 방치돼 왔다.
그러나 독일 통일 이후인 95년 드레스드너 방크 (은행)과 ZDF (방송)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신문)이 공동으로 복원운동을 시작했다. 교회 건물은 2003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원형 지붕 공사는 올해 안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최근 2차대전 당시 연합군에 가담한 국가들 사이에서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도 아닌 드레스덴에 대해 연합군이 심하게 폭격했다’는 자성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영국의 민간단체들은 조각상을 만들어 기부하는 형식으로 교회의 재건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베를린〓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