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외교통상부와 경찰, 국가정보원 등 관련부처 사이에 정보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건해결이 늦어지거나 미궁에 빠지는가 하면 납치신고를 해도 관할다툼으로 외면하는 사례까지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무책임한 현지 영사관〓중국 베이징(北京)의 한국대사관 영사부는 하루 근무시간이 4시간 반이다. 오전 10∼12시와 오후 2∼4시반에만 여행객들의 전화를 받는다.
이 때문에 밤에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납치와 살인, 강도사건을 즉각 신고할 길이 없다. 또 여행객이 몰리거나 사업상 회식이 잦은 토, 일요일엔 휴무일이라는 이유로 영사부 전화가 아예 먹통이다. 이같은 사정은 선양(瀋陽)과 상하이(上海), 칭다오(靑島)의 영사관도 마찬가지.
심지어 관할구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건신고의 접수를 거부한 경우마저 있다. 최근 조선족에게 납치됐다 가까스로 탈출한 무역업자 김수흥(金秀興·35)씨는 29일 귀국기자회견에서 “칭다오 영사관에 신고했더니 납치장소가 상하이라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했다”며 “어떻게 위험에 처한 자국민을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느냐”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유관부처 공조 소홀〓납치사건이 발생해도 영사관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관련기관의 공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조명철(趙明哲·41)씨 납치사건 때 경찰은 현지 주재관을 통해 계속 연락하면서도 ‘수사기밀’이란 이유로 대사관과 총영사관측에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따라서 주중대사관측은 수사진전사항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국가정보원 역시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독점하고 경찰 등 유관기관에 별다른 협조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늑장 대응〓미국 등 선진국은 자국민이 해외에서 납치 또는 피살됐을 경우 정부간 긴급채널을 가동, 즉각 수사관을 파견해 진상조사에 착수하고 경고를 내려 사태재발을 막고 있다. 그러나 한국대사관의 경우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 최근 납치사건이 빈발하고 있음에도 자국민 안전대책은 거의 전무해 신변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실제 지난달 말 현재 주중대사관 등에 신고된 11건의 납치사건중 올해 발생한 4건의 경우 당국의 대응이 신속했으면 피해를 막거나 줄일 수 있었다고 피해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관과 총영사관은 최근 홈페이지와 교민소식지를 통해 ‘주의사항’을 담은 안내문을 돌렸을 뿐 별다른 안전대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
▽정보 부재〓대사관과 경찰 등 관련기관들의 정보부재도 큰 문제다. 현재 조선족의 납치조직만 7, 8개로 추정되지만 현지 대사관과 경찰은 어느 규모의 어떤 조직이 있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이번 납치범 수사가 지지부진한 것도 바로 이 때문.
중국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 사업가는 “대사관측이 북한관련 정보에 매달리다 보니 사업가나 여행객들의 안전에는 소홀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하종대·김상훈기자·베이징〓이종환특파원>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