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大選 D-3 판세 분석]푸틴 독주…과반 득표 최대관심

  • 입력 2000년 3월 22일 19시 25분


러시아 대통령선거가 26일 실시된다. 소연방 해체 후 세번째인 이번 대선은 지난해 말 사임한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 이후 러시아의 진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행사. 그러나 옐친이 후계자로 지명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권한대행(47)이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보여 선거 전에 누구나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 맥빠진 상황이다.

▽선거판세〓지난달 지지율이 60%까지 치솟았던 푸틴의 인기는 최근 떨어졌다. 그러나 여러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50%대의 지지율로 96년 대선에서 옐친과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던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수(55)를 2배 이상 앞서고 있다. 푸틴은 26일 선거에서 총투표수의 50% 이상을 얻으면 당선이 확정된다. 과반수 득표에 실패하면 다음달 16일 2위 득표자와 결선투표를 하지만 어느 경우든 승리가 확실하다는 분석. 모두 12명의 후보 중 푸틴과 주가노프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지지율이 5%에도 못 미쳐 관심 밖이다.

▽푸틴 현상〓지난해 8월 총리가 되기 전까지 대중적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푸틴은 2, 3개월 만에 대권경쟁의 선두에 나서는 이변을 일으켰다. 지난 10년 동안 늙고 병든 옐친의 무기력한 지도력에 지친 국민에게 젊고 강력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악명 높은 구소련의 비밀경찰이던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의 경력도 오히려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 주리라는 기대로 바뀌었다.

인기 급등의 직접적 원인은 체첸전. 그동안 독립을 요구하며 골머리를 썩였던 체첸을 많은 희생과 서방의 반발을 무릅쓰고 무력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90년대 이후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이 형편없이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던 국민은 오랜만에 어깨를 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제유가가 배럴당 35달러까지 오르는 초강세를 보이면서 전체수출의 20%를 석유수출에 의존해온 경제가 모처럼 살아나는 등 행운도 따랐다. 지난해 러시아 경제는 시장경제가 도입된 92년 이후 처음으로 2% 성장했다.

▽주요쟁점〓이번 대선은 ‘개혁의 계속이냐, 구시대로의 복귀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96년과 비교할 만한 뚜렷한 쟁점이 없다. 승리를 자신한 푸틴은 3일부터 시작된 TV 토론에도 불참해 “슬로건도, 공약도, 선거운동도 없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 이번 선거는 정책이 아니라 후보의 개인적 인기와 이미지에 의해 이미 승부가 나버렸다는 평. 러시아 유권자연맹의 세르게이 트루베 사무총장은 푸틴이 내놓은 선거공약 중 눈에 띄는 것은 ‘범죄 및 부패와의 전쟁’ 정도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2월 총선 이후 푸틴정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공산당의 주가노프 역시 체첸전과 경제개혁, 대(對)서방관계 등 주요현안에서 푸틴과 차별되는 공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책으로 보면 5% 안팎의 지지율로 3위를 달리는 그리고리 야블린스키(48)가 가장 돋보인다. 가장 개혁성향이 강한 후보로 평가되는 야블린스키는 체첸전의 정치적 해결과 적극적인 시장개혁 등을 들고 나왔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러시아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전향적인 주장을 폈다. 푸틴이 ‘법에 의한 독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을 계기로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새로운 독재체제 출현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오랜 혼란만 끝난다면 독재라도 상관없다”는 대다수 국민의 목소리에 묻혀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선거 어떻게 치러지나▼

광활한 국토로 10개 시간대를 갖고 있는 러시아의 투개표는 간단치 않다. 투표는 현지시간으로 26일 오전8시부터 오후8시까지 12시간동안 이뤄진다. 극동의 추코트카에서는 25일 밤11시 투표가 시작되며 발트해 연안 칼리닌그라드는 26일 밤9시 투표가 끝나 실제 걸리는 시간은 22시간. 한국과의 시차는 현재 6시간이나 투표일인 26일 러시아에 ‘서머타임제’가 시작돼 시차는 5시간으로 줄어든다.

투표를 마치자마자 개표가 시작돼 칼리닌그라드에서 투표가 진행중일 때 극동지역은 개표가 끝나있는 것이 보통. 그러나 결과는 전지역에서 투표를 마칠 때까지 발표하지 않는다. 아직 투표가 끝나지 않은 지역의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다.

총유권자 1억790여만명 중 선거당일 투표가 어려운 오지 주민과 군인 등은 15일부터 이미 투표에 들어갔다. 9만4000여 투표소의 개표 결과를 끝까지 집계하는 것도 쉽지 않아 선관위의 공식 결과 발표는 다음달 4일 나올 예정. 그러나 선거 다음날인 27일 정오경(한국시간 오후5시경) 90%이상 개표가 끝나므로 선거결과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운동은 선거일 하루전인 25일까지 1개월간 실시한다. 그러나 짧은 기간 전국을 모두 돌면서 직접 유권자와 접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구가 많은 거점도시를 방문해 기자회견이나 강연을 하는 것이 고작. 따라서 선거운동의 대부분은 언론매체를 통해 이뤄진다. 관영방송이 후보의 방송연설과 후보자간 토론을 중계하며 선관위가 각 후보에게 주요신문의 지면을 나눠주는 등 선거비용을 국가가 보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TV 광고는 후보 개인부담이므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하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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