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지난해 8월 총리에 지명될 때까지 대중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평생을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그 후신인 연방보안부(FSB) 안보회의, 크렘린궁 등 ‘음지’에서 보냈기 때문.
▼16년간 해외공작 종사▼
1952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푸틴은 레닌그라드대 법대를 졸업하자마자 KGB에 들어가 구동독의 드레스덴에서 활동하는 등 16년 동안 해외공작 분야에서 일했다. 중고교 때부터 첩보원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을 정도로 KGB에 대한 선망과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정작 조직에선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KGB 근무경력은 일생을 통해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1989년 독일 통일을 몰고왔던 베를린장벽 붕괴는 대표적 사례. 군중이 KGB지부 건물을 포위하는 등 혼란이 극에 이르자 푸틴은 모스크바에 훈령을 요청했으나 회답을 받지 못했다.
푸틴은 “이미 소련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독재를 하더라도 먼저 국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을 굳혔다.
▼옐친에게 후계자로 발탁▼
푸틴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인은 고(故)아나톨리 소브차크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과 아나톨리 추바이스 연합전력(UES)사장,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이다. 대학은사인 소브차크는 그를 정계에 입문시켰다. 소브차크가 푸틴의 치밀한 성격을 높이 사 그를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에 임명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1996년 푸틴과 고향이 같은 추바이스 대통령 행정실장은 그를 모스크바로 불러올려 대통령행정실 차장을 맡겼다. 푸틴은 이후 1998년 친정격인 FSB부장에 오르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옐친은 지난해말 무명의 푸틴을 후계자로 삼아 그를 ‘크렘린의 기린아’로 바꿔놓았다.
푸틴이 옐친의 후계자로 결정된 배경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추바이스 등 크렘린 실력자들의 추천과 “충성스러운 푸틴이 퇴임 후를 보장해줄 수 있으리라”는 옐친의 기대가 맞아떨어졌으리라는 추측만 나오고 있다.
▼국민에 강한 인상 심어줘▼
푸틴이 이번 선거전에서 일찌감치 선두에 나선 것은 체첸전에서 보여준 그의 강인한 이미지가 러시아 국민의 자존심을 크게 고무시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늙고 병약한 옐친과 대조되는 젊고 정력적인 푸틴에게 국민은 열광했다. 푸틴은 초음속전투기를 타고 체첸을 방문할 정도로 건강에 자신있는 만능 스포츠맨. 특히 유도 유단자에 삼보(러시아의 고유 격투기)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챔피언을 지내는 등 무술에 남다른 취미가 있다. 선거전을 마친 25일에도 푸틴은 축구경기를 관람했다.첩보원 출신답게 과묵하고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지만 극장이나 영화관을 즐겨 찾는 정서적인 모습도 있다. 부인 류드밀라를 레닌그라드의 한 극장에서 만나 데이트를 시작했다. 대통령대행이 된 후 서방지도자로는 처음 러시아를 찾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부부동반으로 오페라를 보기도 했다. 그는 동독 근무 시절에도 저녁마다 영화관을 찾았다.
푸틴의 진정한 면모는 여전히 장막 속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강력한 러시아를 내세우고 있는 푸틴의 크렘린 입성이 러시아와 국제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올 것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