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문화 다원주의'에 다시 관심

  • 입력 2000년 4월 2일 21시 07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을. ‘2000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이 3월29일부터 1일까지 이탈리아 중북부의 고도(古都) 볼로냐에서 열렸다. 이 도서전은 세계 최고 권위와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어린이 책 박람회. 미국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80여국 1400여 출판사와 멀티미디어 업체가 참가했고 3만여 출판 관계자와 일반인이 현장을 찾았다. 이번 도서전은 21세기 어린이 책의 흐름을 잘 보여주었다. 전세계의 어른들로선 어린이를 위해 어떤 생각으로 어떤 책을 만들어야 할 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한 자리이기도 했다.》

‘상상력 없이는 논리도 없다’, ‘다양한 문화 속에서 풍성한 상상력이’.

올해 도서전의 두드러진 특징은 상상력 계발과 문화다원주의의 부활. 특히 문화다원주의가 눈길을 끌었다.

전시장의 메인 출입구.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이집트의 아동문학 작품, ‘스무가지 이야기 속에 나타난 모하마드의 삶’이었다. 서구의 작품이 아닌 아프리카의 이집트 작품이 전시장 맨 앞을 차지했다는 사실이 상징하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이집트 작품 '새지평'賞 받아▼

어린이 출판물이 서구 중심의 획일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문화의 다양성, 각 민족의 전통 속에 숨어있는 독자적인 문화와 그 이미지를 되살려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스무가지…’는 올해 새로 제정된 ‘새로운 지평’상(賞) 수상작이다. 이 상은 중동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삼세계의 아동문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주최측은 “최근 이들 지역의 아동문학이 부상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한다”면서 “이번 전시회에서도 세삼세계 아동물은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고 자부했다. 전시장 입구 뿐만 아니라 개별 전시관 곳곳에 이 책을 진열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세계 어린이 도서가 그동안 일러스트나 이미지면에서 지나치게 서구 중심으로 흘러왔던 것에 대한 반성이다.

▼제3세계 아동물에 관심 커▼

볼로냐 도서전은 성인물 도서전처럼 핫이슈가 터져나오지는 않는다. ‘대박’을 노리는 작품에 대한 저작권 계약 등과 같은 큰 비즈니스가 이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문화다원주의와 같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의미있는 움직임이 있다.

이러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서구 국가들의 진정한 의식변화라기 보다는 새로운 틈새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가진 자의 아량’에 불과하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영향력있는 서구의 출판사들이 서구적 이미지의 작품들만 사들이려 한다는 것이 그 한 예다.

▼'가진자의 아량' 비판 의견도▼

지난해 볼로냐도서전에서도 아프리카를 주제로 한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가 있었지만 아프리카의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진정한 작품보다는 서구화된 아프리카 이미지가 많았다는 지적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어린이 책에 있어서의 진정한 문화 평등과 다문화주의는 이번 볼로냐 국제도서전이 제시한 하나의 흐름인 동시에 과제인 셈이다.

한편 이번 도서전에는 어린이 서적 외에 학습교재 멀티미디어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도 함께 마련돼 세계 각국에서 모인 출판인들간에 저작권 계약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또 각국의 관계 전문가가 참가한 토론회 ‘학교에서의 멀티미디어 사용법’도 열렸다. 단순한 책 전시회에 그치지 않고 어린이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공동 노력이 돋보인 도서전이었다.

▼한국 '재미마주' 외롭게 참가▼

대부분의 나라가 출판사 단위로 개별 부스를 만든 반면 중국 대만은 각각 국가전시관을 만들어 20여개의 출판사들이 참가한 것도 눈길이 가는 대목. 중국과 대만이 국가 차원에서 세계 어린이 책시장 공략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이 도서전에 4년째 참가해온 ‘재미마주’ 출판사만이 전시장을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 ‘재미마주’는 한국적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미국 유럽 출판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 1400여개 출판사가 참가한 볼로냐 도서전. 세계 10위권의 출판대국 한국에서 오직 한 출판사만이 참가했다는 점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볼로냐〓이광표기자>kplee@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특별전…전세계 163명 초대 전시▼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의 중요 관심거리 중 하나는 일러스트레이션. 어린이 도서에는 상상력을 길러주는 일러스트레이션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도서전에서도 전세계 일러스트레이터 163명의 작품이 초대 전시됐다. 픽션 부문에 82명, 논픽션 부문에 81명. 그러나 한국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은 한점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볼로냐 도서전 조직위원회는 초대 작가 중 픽션과 논픽션 부문에서 대표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 특별전을 개최했다.

픽션부문 대표는 이탈리아의 신예 일러스트레이터 지안루카 가로팔로(32). 그의 초대작은 원숭이의 얼굴을 세밀하고 친근하게 묘사한 ‘동물의 초상’. 그의 작품은 동물의 특성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논픽션부문에선 일본의 에츠코 나카츠키(63)가 선정됐다. 작품은 ‘사람’. 사람의 특징을 극도로 단순화해 마치 유령의 이미지와 같이 형상화함으로써 아이들에게 환상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에츠코 나카츠키는 지난해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1999 브라티슬 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바 있다. 그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매체를 선택하는데 늘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홈페이지의 일러스트레이션 코너로 들어가간 두 개의그림이 있습니다. 원숭이는 니안루카 가로팔로의 작품 ‘동물의 초상’, 유령같은 그림은 에츠코 나카츠키의 작품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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