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CG社 유전자해독 파장]유전자 지도 누가 먼저 만드나

  • 입력 2000년 4월 7일 20시 03분


게놈(인간 유전자 정보) 해독 작업에 획기적인 진전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생명공학회사인 셀레라 제노믹스사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한 사람의 DNA 내 30억개 염기쌍의 명단이 일단 작성됐다.

남은 과제는 염기쌍을 순서에 따라 정확하게 배열해 지도처럼 만드는 일이다. 염기쌍을 지도화하는 작업은 유전자 하나하나의 정체와 역할, 그리고 유전자간의 상호작용을 밝혀 내는 게놈 연구의 핵심 작업이다.

셀레라의 크레이그 벤터 사장은 6일 “이번 성과가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또 다른 5명의 유전자 구조도 규명해 인간 게놈의 최종모델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인간 생명의 비밀을 이해하는 암호인 유전자에 대한 해독은 특히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새로운 의약품 개발의 기초가 된다. 이 때문에 지난 몇 년간 각국의 민간과 공공 연구기관들이 해독작업에 매달려 왔다.

▼"시작에 불과" 평가 절하도▼

미국 영국 등 15개국 정부가 공동 추진 중인 ‘인간게놈프로젝트’팀은 인간 유전자지도의 초안을 5월에 발표하고 2003년에는 완전한 지도를 내놓겠다고 2월에 밝힌 바 있다. 인간게놈프로젝트팀은 셀레라사와는 달리 DNA의 염기쌍을 순서에 맞춰 배열하는 방법으로 지도를 조금씩 완성하는 방법을 택했다. 현재 23억개의 염기조합 배열을 밝혀내 이 정보를 공개한 바 있다. 이같은 선행 연구 결과는 셀레라사의 해독 작업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이번 셀레라의 발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연구자들도 있다. 미 워싱턴대 마이클 왓슨 교수는 “이번 발표는 한 권의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게재될 단어를 모두 순서없이 늘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하면서 “연구 결과를 전혀 공개하지 않는 점도 의아하다”고 말했다. 휴스턴 소재 베이어 의과대의 리처드 깁스 교수도 “셀레라사의 발표는 회사 주식 시세를 조금 높이는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특허료 받으면 제약업계 타격▼

각국 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간게놈프로젝트는 모든 연구 성과와 정보를 무료로 공개해 이를 필요로 하는 국가나 기관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민간회사인 셀레라는 질병 치료의 핵심인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특정유전자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정보를 특허등록해 제약회사에 넘기고 신약 개발시 10% 가량의 특허사용료를 받는 것이 목적이다. 이미 여러 회사와 계약을 하고 있다. 벤터 사장은 6일 미 의회에 출석해 “셀레라는 최종 게놈 연구 결과를 인터넷에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방대한 양의 분석 자료 전체, 또는 특별히 제약회사가 필요로 하는 자료는 그동안 투입된 연구비를 고려할 때 수백만 달러는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셀레라가 인간게놈프로젝트팀보다 먼저 유전자지도를 만들게 되면 난치병 치료와 신약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제약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CG창립자 벤터박사/'유전자 王' 별명 생명공학의 귀재▼

셀레라 제노믹스는 98년 5월 설립된 미국의 생명공학회사. 창립자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셀레라의 사장 겸 최고과학담당 임원으로 ‘유전자왕’이란 별명이 말해주듯 생명공학 분야의 독보적인 인물이다.

벤터는 84년 이후 미 국립보건원에서 신경질환과 뇌졸중 연구소 책임자로 일해왔으며 90년 미국 일본 등 15개 국가가 공동으로 인간게놈프로젝트팀을 발족시킬 때 핵심멤버로 참여했다. 92년에는 비영리단체인 유전자연구소(TIGR)를 세웠다.

그는 생명공학의 상업적 잠재력에 주목해 자동 염기서열 분석기를 생산하는 컴퓨터회사인 퍼킨엘머사와 손잡고 CG를 만든 다음 인간게놈프로젝트와 유전자정보 해독 경쟁을 벌여왔다.

그는 인간 유전자 전체를 무작위로 분할한 다음 질병과 관련있는 부분만 중점적으로 해독하고 이를 다시 조각맞추기 놀이처럼 조립해내는 ‘샷건 테크닉’이란 분석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 덕택에 98년 9월 뒤늦게 게놈 해독을 시작했지만 1년반 만에 각국이 10년째 이뤄낸 업적을 능가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벤터는 평소 “유전자 연구는 시간과의 경쟁”이라고 말해왔다. 셀레라란 회사 이름을 ‘속도’를 뜻하는 라틴어 ‘클레리타스’에서 따온 것도 이런 생각에서였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