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종전 25돌]펑 경제학박사 "정부 개혁의지 확고"

  • 입력 2000년 4월 27일 19시 33분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트남의 명망높은 경제학자인 구엔 슈안 펑 박사(60)는 27일 25년전 전쟁이 끝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지긋지긋한 싸움을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다고 회고했다.

남부 월남 출신으로 통일 후 옥살이를 했던 그는 개혁개방정책인 ‘도이 모이(쇄신)’가 실시되면서 전문능력을 인정받아 86∼90년 응웬 반 른 공산당 총서기장의 경제자문관을 지냈다. 지금은 ‘베트남 과학기술연합(VUSTA)’ 사무차장을 맡고 있다.

펑 박사는 “베트남전쟁은 몽골 프랑스 일본 등 외세 침략에 맞서 싸웠던 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이라는 외세와 싸운 민족해방 전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남쪽 정부는 너무 부패해 어떤 방향으로든지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술회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현재의 베트남 상황에 대해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을 확고히 하면서 경제적으로는 개혁과 개방을 추구한다는 당과 정부의 원칙이 아시아 경제위기로 인해 난관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87년 외국인 투자유치법을 만든 이래 매년 20억달러를 웃돌던 외국투자자본은 지난해 6억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펑 박사는 베트남의 경제 전망은 밝다고 강조했다. 인구가 8000만명으로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 실현이 가능한데다 노동력의 질이 동남아시아 국가 중 최상위급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계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외국자본 유치 절차의 간소화와 연간 38억달러에 이르는 지하경제를 표면으로 끌어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미국과의 무역투자협정 체결이 미뤄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갑작스러운 경제환경 변화를 지도층이 두려워하는 탓도 있겠지만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견제가 더 큰 장애물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내전을 직접 경험했던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 태어난 25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피어린 조국의 역사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이 서운한 듯했다. 중장년층은 ‘세계에서 미국과 싸워 이긴 유일한 민족’이라는 강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미국의 문화에 ]빠져 최근 정부가 외국 대중문화의 유입 속도를 늦춰야 할 정도라는 것.

펑 박사는 “베트남은 도이모이를 도입한 이래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면서 “정부가 글로벌 경제에 동참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진 이상 개방의 흐름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나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호치민〓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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