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개 등급 훈장 가운데 통상 일본 국립대 교수들이 받는 것보다 한 등급 높은 4등급 훈장 ‘스이호쇼(瑞寶章)’를 김씨가 받게 되는 것. 일본 정부는 김씨가 한국어 교육 발전과 한일 스포츠 교류에 힘쓴 공로를 높이 샀다.
올 봄에 긴키대를 정년퇴직한 김씨는 한일 양국에서 모두 인정받는 일본 내 한국어 교육의 1인자. 이화여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8년 도쿄(東京)교육대(현 쓰쿠바·筑波대)에서 체육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가 곧바로 다시 일본에 왔다.
당시 다쿠쇼쿠(拓植)대 총장이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총리가 일본 내 국립대학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어 강좌를 열면서 김씨에게 강의를 청했다. 그는 전공분야가 아니라고 고사했다. 그러나 나카소네 전총리는 “일본인들이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말을 공부할 기회가 없어서야 되겠느냐”며 설득했다.
당시에는 변변한 한국어 교재도 없는데다가 김씨 자신도 일본어 교육을 받으며 자란 세대였다. 국어학자 이희승(李熙昇)박사를 찾아가 국문법을 배워가며 교재를 만들었고 남몰래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3개월 간 한국어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다쿠쇼쿠대를 거쳐 쓰쿠바대 도카이(東海)대 센슈(專修)대 등에도 한국어강좌를 개설해갔다. 지금까지 가르친 제자는 수천명. 나카소네 전총리와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일본 체육계 인사 및 기자단에게 한국어 특별교육을 무료로 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양국 어학교육에 필수적인 한일사전과 일한사전을 완성했다. 7년 동안 수천쪽 분량의 사전을 만들다보니 눈이 망가져 사전 출판 후에는 백내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의 끊임없는 정열에 감동한 나카소네 전총리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전총리가 출판기념회를 열어줬다. “30여년간의 고생을 일본 정부가 알아주니 더 이상 바랄게 없다”는 그는 최근 본래 전공을 살려 한국에서 한국여성체육지도자총연맹을 조직했다. 한국측 2002년 월드컵자문위원을 맡아 한일 체육교류에도 열심이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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