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스탠리를 대표하는 애널리스트인 바톤빅스가 한 시대를 풍미하던 투자의 세 거장 조지 소로스, 워런 버핏, 줄리안 로버트슨의 몰락을 바라보는 소회다.
그는 “최근 미국 증시에서 나타나는 광기가 지속되면 될수록 증시가 안정적인 상승세로 돌아서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미국에서 ‘20세기의 투자영웅’으로 꼽히는 이들 전설적인 투자가는 작년의 기술주 폭등과 4월말 이후의 기술주 폭락장세에서 큰 손해를 보았다.
워런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투자회사 버크셔 헤더웨이의 수입은 작년에 무려 42%나 떨어졌고 이 회사가 사들인 주식 값도 20%이상 폭락했다.
세계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인 타이거 펀드를 길러낸 줄리안 로버트슨은 3월말에 투자실패에 따라 자신이 세운 헤지펀드 6개를 모두 청산하기로 했다.
‘펀드의 연금술사’인 조지 소로스도 가장 아끼던 펀드매니저들을 20∼30%가량의 운영손실을 낸 데 대해 책임을 물어 내쫓고 일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가치주위주 투자고집 발목잡혀▼
이들이 몰락하게 된 원인은 다소 다르다. 버핏과 로버트슨은 첨단기술주를 외면하고 철저하게 가치주 위주의 투자만 고집해온 것이 화근이었다면 소로스는 뒤늦게 기술주를 사들였다가 상투를 잡혀 큰 손해를 보았다.
문제해결 방식도 다르다. 단기 환투기로 떼돈을 번 전력이 있는 소로스가 발빠르게 자신의 헤지펀드 구조개혁을 단행했지만 버핏과 로버트슨은 여전히 자신들의 투자철학을 당당히 밝히고 있다.
워런 버핏은 지난달 29일(미국시간) 열린 IR(투자자설명회)에서 1만6000여명의 고객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철저하게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종목은 결코 사지 않는다’, ‘나는 업종을 사지 개별종목을 사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종목에는 앞으로도 손대지 않겠다’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로버트슨은 이보다 앞서 3월말 월가를 떠나면서도 “솔직히 지금 증시는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돈을 맡아 관리할 수 없다”고 당당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어찌 보면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해서 투자에 실패한 이들의 발언에 후배 증권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투자자들도 여전히 찬사 내지는 동정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건전한 투자방식 재조명 받아▼
미국 증권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소로스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으나, 이들이 지금까지 장기간 높은 투자수익률을 거둔 것과 아울러 경제 전체에 좋은 영향을 주는 건전한 투자를 선도해왔다는 점을 꼽는다. 최근 나스닥시장이 극심한 조정을 겪으면서 버핏류의 가치투자 또는 정석투자가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 펀드매니저들이 작년 하반기 이후 쓰디쓴 투자실패를 맛보았다. 대부분 작년 10월 이후 기술주 주가가 급등할 때 투자위험을 감안해 따라잡지 못했다가 올들어 뒤늦게 기술주를 적극 사들였다가 큰 손해를 봤다. 이들에게는 동정은커녕 비난과 힐책이 쏟아졌다.
국내에서 가치투자방식을 대표해온 한 펀드매니저는 “우리나라에서는 펀드매니저가 자신만의 투자방식을 실험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면서 “긴 안목에서 보면 요즘처럼 증시 변동이 심할 때일수록 펀드매니저의 소신 투자를 용납해주고 기다려주는 투자자들의 아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