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열기의 진앙(震央)에는 물론 분단 이후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성사되는 남북정상회담이 자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주목되는 대목은 북한의 움직임. 6월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이달에만 미국(로마 북-미 회담), 중국(리펑·李鵬 전인대 상무위원장 방북), 일본(10차 수교 회담) 등 핵심 주변국들과 거의 동시에 대화를 벌인다. 또 호주와는 이달 중 15년만에 수교 관계를 복원시킬 예정이고 영국과도 실무 관계 협의가 벌어진다.
그동안 북한과 대항축을 형성해온 한 미 일 3국의 발걸음도 무척 분주하다. 반기문(潘基文)외교통상부차관이 미국을 방문한데 이어 8일 일본을 찾고, 웬디 셔먼 미국무부 자문관은 8일 방한한 뒤 중국과 일본을 잇따라 방문한다. 12일에는 한 미 일 3국 조정감독그룹회의(TCOG)가 열리며 이달 말에는 미국 핵의혹시설조사단이 북한 금창리에 대한 재조사 작업을 벌인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처럼 다양한 대화 채널 가동의 이면에는 ‘북한의 대외 개방 움직임’이라는 ‘본질’이 자리잡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당장 급한 경제 회생의 돌파구를 찾고 서방세계와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안정적인 발전 기반을 확보하겠다는 게 북한의 전략적 기조인 셈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남북정상회담은 당면 현안이고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호주 등 서방 세계와의 관계 개선은 남북문제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다. 나머지 한 미 일 3자회동이나 미-EU 회담 등은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 협상에 따른 부산물로 정리하면 된다.
정부 일각에서는 그동안 굳게 빗장을 걸어 잠가온 북한이 상대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 대화’에 나선 배경을 심층 분석 검토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과연 북한이 한꺼번에 주변국을 모두 상대할 만큼 외교력을 갖추고 있을까”라는 의문도 제기한다.
아무튼 북한의 최근 행보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과감하고 폭넓은 변화라는 점에서 정부의 적정하고 능동적인 대응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