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가 종신 상원의원 자격으로 누리고 있는 면책특권의 박탈여부를 심리해온 산티아고 항소법원 재판부 24명은 찬성 12 대 반대 10으로 면책특권 박탈을 결정했다고 AP 등 외신이 전했다.
피노체트가 원할 경우 대법원 상고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재판 불간섭’을 주장해온 사법부와 칠레 정부의 입장을 고려할 때 ‘통과 절차’에 불과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민주국가에서 사법부는 존중받아야 한다”며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떤 세력도 법원에 압력을 행사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면책특권 박탈에 따라 피노체트는 108건에 달하는 형사소송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또 군사 정권 시절 자행된 살인과 납치(3191명) 고문 등 각종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도 피할 수 없게 됐다.피노체트의 면책특권 박탈에는 73년 ‘죽음의 특공대’로 불리던 특수부대 요원들이 저지른 정치범 72명의 납치 및 행방 불명 사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 피노체트의 쿠데타 직후 결성된 ‘죽음의 특공대’는 반체제인사와 좌익인사를 납치해 살해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중 19명의 행방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칠레의 많은 정치인과 인권단체들은 항소법원의 결정을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그러나 리카르도 이수리에타 육군참모총장은 “만족스럽지 못한 결정”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군부는 지난주 피노체트 재판과 관련, “헌법을 존중하겠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한 적이 있어 기소 절차에는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피노체트는 98년 10월 영국 런던에서 반인륜 범죄 등의 혐의로 체포돼 16개월간 연금상태에 있다가 올 3월초 석방돼 귀국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