比 여객기 무장 납치범, 1800m상공 낙하산 점프

  • 입력 2000년 5월 25일 23시 48분


여객기를 공중 납치했다가 공항 착륙 직전에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린 희한한 납치범이 등장했다.

25일 필리핀 남부 다바오를 떠나 마닐라로 향하던 필리핀 에어라인 소속 에어버스 330 여객기가 무장 괴한에게 납치됐다. 피랍 여객기에는 승객과 승무원 291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나 납치범은 단 한 명뿐이었다.

이 납치범은 여객기가 목적지인 마닐라시 니노이 아키노 공항에 거의 이르렀을 때 권총과 수류탄으로 승무원과 승객을 위협, 비행기를 다바오로 되돌리라고 요구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목격자들은 납치범이 배가 아프다면서 조종실에 가까운 화장실에 들어간 뒤 스키 마스크와 물안경을 쓰고 나왔다고 전했다.

다바오가 속한 남부 민다나오 섬에는 이슬람 분리주의 반군과 공산주의 반군 등에 의한 납치와 인질극이 빈발하는 상황이어서 납치 사실을 접한 필리핀 경찰과 언론은 무장 테러의 하나가 아닌가 바짝 걱정했다.

그러나 상황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승무원들이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960㎞ 떨어진 다바오로 돌아가기에는 연료가 부족하다며 회항을 거부하자 납치범은 1800m 상공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렸다.

승객들은 “납치범이 뛰어내리기 전 엉엉 울면서 돈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한 승무원은 납치범이 여객기 비상구를 열게 한 뒤 집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낙하산을 둘러메고 뒤에서 떼밀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고 전했다. 납치범이 뛰어내린 뒤 여객기는 비상구가 열린 채 비행했으나 아키노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승객들도 모두 안전하게 내렸다. 결국 납치범은 마닐라 남쪽 라구나에서 수색에 나선 경찰에 체포돼 ‘싱거운 납치극’은 막을 내렸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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