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3일 “표도로프가 많은 사람에게 시력을 되찾아 줬으며 의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진정한 선구자였다”고 애도했다.
표도로프는 70년대 초 레이저나 칼로 각막을 깎아내 근시를 교정하는 수술기법을 최초로 선보여 70∼80년대에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이 수술법은 부작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방으로 전파돼 지구촌 전역에서 대중화될 정도로 발전했다.
표도로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방) 정책으로 자영업이 허용되자 86년 개인병원인 ‘안과미세수술 연구기술단지’를 설립했다. 이 병원에서는 환자가 누운 수술대가 이동하면서 자동차 조립공정처럼 단계별로 수술이 진행됐다. 환자는 수술대에 누운 채 의사가 기다리고 있는 5단계의 수술실을 차례로 거치면서 눈수술을 받았다. 이런 분업식 수술 때문에 “병원이 아니라 ‘의료공장’”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연간 수천명이 난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표도로프도 큰돈을 벌어 백만장자가 됐다. 그는 명성과 재력을 바탕으로 9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고 하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이런 이력의 그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페름주(州)의 한 병원 안과과장으로 있던 젊은 시절인 60년, 인공수정체 이식 수술을 처음으로 시도했다가 반(反)생리학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병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이처럼 ‘상식을 파괴하는’ 도전정신이 그를 최고의 안과 전문의로 발돋움하게 한 밑거름이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