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남북정상 만찬 빛낸 문배주 제조 이기춘씨

  • 입력 2000년 6월 15일 19시 29분


“문배주는 주암산물로 만들어야 제 맛이지요….”

14일 평양 목란관 만찬석상.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준비해 간 하얀 사각도자기병의 문배주를 꺼내자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이희호(李姬鎬)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북회담 때마다 단골로 등장해온 문배주. 이 술도 고향에 가니 제 대접을 받는 듯했다. 이 문배주를 빚은 문배주제조 중요무형문화재 이기춘(李基春·58)씨도 서울의 집에서 TV를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그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고향 평양에서 월남한 뒤 양곡관리법에 묶여 희석식소주밖에 만들 수 없게 되자 “알코올에 물을 탄 술을 어떻게 마시게 하느냐”며 문배주공장 문을 닫고 평생 고향의 물(평양 주암산샘물)로 빚은 제대로 된 문배주를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타계한 선친(이경찬·93년 작고)이 생각나서였다.

이씨는 “증조모로부터 대물림해 온 문배주 제조기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제맛을 내려면 평양 대동강변의 주암산샘물과 고향에서 나는 수수와 조로 빚어야 한다”면서 “김위원장이 문배주를 제대로 아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평양 북쪽에 있는 주암산샘물에 얽힌 전설을 소개했다. “한 효자가 위독한 어머니에게 주암산샘물을 떠다 드리자 어머니가 왜 이리 독한 술을 주느냐고 한 뒤 금방 병석을 떨치고 일어났다는 겁니다.”

이씨는 주암산 부근 평천양조장집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선친의 유언에 따라 문배주 전수과정을 거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현재 인하대에서 민속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의 아들도 발효공학과 농화학을 전공해 가업을 이을 예정이다. 이씨는 “4년 전 북한측 고위인사로부터 남북합작공장을 북한에 짓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북한잠수함침투사건 등으로 거절했는데 이번에 투자여건이 호전된다면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현재 이씨는 경기 김포군 양촌면 마산리에서 지하 300m 암반수로 문배주를 빚고 있다.

<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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