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에 이물질을 넣은 뒤 돈을 요구하는 범죄자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거액의 손실을 보아가며 소비자 안전을 지킨 일본의 한 대형 제약회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가정용 안약을 주로 생산 판매하는 산텐(參天)제약이 주인공. 이물질을 넣은 이 회사 안약제품과 함께 “2000만엔(약 2억원)을 내놓지 않으면 시중에 이물질을 넣은 안약을 무차별 살포하겠다”는 협박장이 이 회사에 도착한 것은 14일.
회사측은 범죄자에게 돈을 주고 협박사건을 조용히 끝낼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고객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부터 모든 사원을 동원해 전국 점포에서 해당 제품을 회수했다. 모리타 다카카즈(森田隆和)사장은 이날 저녁 기자회견을 통해 협박받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경영상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제품을 전량 회수해 고객의 안전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산텐제약은 전국 7만개 소매점에서 판매하던 가정용 안약 24개 품목, 250만개를 20일까지 모두 회수하고 TV광고도 중단했다. 이에 따른 피해액은 3억엔(약 30억원).
당초 회사 내에서는 회수 등에 따른 비용이 협박범이 요구한 금액의 10배도 넘고 기업 이미지에도 좋지 않다는 점을 들어 회수작업을 반대하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협박범의 요구에 한번 응하면 모방범죄 가능성이 있고 시간을 끌면 소비자의 안전이 위협받게 된다고 판단해 즉시 전제품 회수의 용단을 내린 것.
산텐제약이 제품 회수 결정을 내리자 소비자들의 격려 전화와 전자메일이 회사에 쇄도했다. 대부분 ‘힘내라’ ‘다시 제품이 나오면 반드시 산텐제약 제품을 사겠다’는 내용이었다.
경쟁 제약회사의 한 임원은 “우리 회사는 그렇게 빨리 결단할 수 없었을 것이다”며 산텐제약의 신속한 결정에 찬사를 보냈다.
산텐제약은 일단 약 봉지를 뜯으면 쉽게 뜯은 사실을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포장을 바꾸어 2주일 후에 상품을 다시 시판할 계획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오사카경찰은 오사카 시내 한 편의점에서 협박장의 초안을 발견하고 방범카메라에 찍힌 범인의 얼굴을 21일 공개했다.
일본에서는 1984년 거액을 요구하며 청산가리를 넣은 과자를 전국 슈퍼 판매대에 진열한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이 발생했으나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올 2월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그 후로도 요구르트에 독극물을 넣고 돈을 요구하는 등 모방범죄가 끊이지 않아 기업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