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6일 올 상반기(1∼6월) 예산보고서에서 “내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예상되는 누적 재정흑자의 규모가 1조8700억달러(약 2057조원)에 이른다”고 예상했다.
이같은 흑자 예상은 2월에 그가 내년 예산안을 의회에 송부할 때 내놓았던 전망치 7460억 달러의 2.5배에 해당하는 규모. 불과 넉달 사이에 재정흑자 전망치가 이렇게 높아진 것은 미 경제가 사상 최장기 호황을 누리면서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고속 성장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회보장제도 분야의 잉여금 2조3170억달러까지 합칠 경우 통합 누적 재정흑자는 향후 10년간 4조193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렇게 넘쳐나는 재정흑자 가운데 사회보장제도 분야에서 남는 돈은 민주 공화 양당이 정부 부채 상환과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은퇴 노인들 지원에 사용키로 합의했기 때문에 일반 재정흑자를 어디에 쓸 것인지가 지금 미 정가의 현안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우리가 앞으로 발생할 대규모 재정흑자를 어디에 쓰느냐가 미국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라며 “당초 목표했던 것보다 1년 앞당겨 2012년까지 우선 정부의 모든 부채를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부채상환 부담에서 벗어나야만 민간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도 많이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야당인 공화당이 노인들의 처방 약값에 대한 정부 보조를 늘리도록 하는 의료지원 프로그램에 동의해 준다면 공화당의 요구대로 기혼자들에게 2500억달러 가량의 감세 혜택을 주겠다는 타협안도 내놓았다.
그러나 공화당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11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 측은 “재정흑자는 국민에 대한 세금감면, 교육 및 의료 분야 지원,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구축 등에 우선 쓰고 난 뒤 정부 부채 상환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앨 고어 부통령은 “세금감면은 부자들에게만 좋은 일”이라고 반박하고 “재정흑자는 사회보장제도와 의료 지원 분야에 사용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부시주지사는 현재 여론조사에서 고어부통령을 10%포인트 안팎으로 앞서고 있어 공화당이 향후 재정흑자의 사용처에 대해 민주당과 쉽게 합의할 것 같지는 않다.
한편 일부에서는 “흑자 전망치는 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지 지금 국고에 돈이 들어온 것은 아니다”면서 “정치권이 대선을 앞두고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