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한반도 ‘華僑의 봄’ 오는가

  • 입력 2000년 6월 30일 19시 39분


최근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김정일노동당총비서가 평양시에 거주하는 화교(華僑)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김일성주석의 동상 건립과 영상작품의 보존사업에 힘쓴 것을 치하한다는 내용이었다.

조금 뜬금없어 보이는 이 보도를 계기로 새삼스럽게 한반도의 화교들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 어느 곳에 살든 그 나라의 상권을 주름잡고야 마는 화교들에게 한반도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불모지’다. 그 점에서는 남북한이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에서도 화교가 ‘뜨고’ 있다. 남쪽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화교자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이들에 대한 각종 규제가 풀리는 등 지위가 향상되고, 북쪽에서도 90년대 들어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보따리 무역을 하는 화교들의 역할이 급격히 커진 것.

최근 남쪽에 거주하는 화교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60년대 이후 사라진 ‘차이나타운’이 다시 건설될지도 모르기 때문.

지난해 인천시가 화교경제인협회와 함께 송도 매립지에 10만∼20만평 규모의 ‘차이나타운’을 건설키로 한 데 이어 서울의 일부 민간단체에서도 중국시장을 겨냥해 화교자본을 유치, 상암동 매립지에 수만평 규모의 ‘한중 첨단 산업단지’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교들에 대한 규제도 몇 년새 많이 풀렸다. 98년7월 정부는 외국인들도 제한없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외국인 토지관리법’을 고쳤다. 화교들에게 ‘생명수’나 다름없는 조치였다. 화교들은 정부의 ‘외국인 토지소유권 제한조치’(67년)에 따라 그동안 200평 이상의 주택과 50평 이상의 점포를 소유할 수 없었다. 70, 80년대 부동산 가격이 폭등, 한국인들이 ‘떼돈’을 벌 때도 화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법적 지위도 달라졌다. 3년에 불과했던 비자 갱신기간이 5년으로 늘었고 최근엔 무기한 체류권(영주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학계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따라 72년 3만2989명을 고비로 매년 줄던 국내 화교인구도 최근 2만20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말 법무부에 등록된 화교는 모두 2만2043명. 앞으로 화교 인구가 되레 늘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화교의 위상에 관한 한 북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은 60년대 주체사상이 확립되면서 북한내 화교들의 중국 방문을 연간 1회로 제한했다. 주로 보따리 무역을 하던 화교들의 생계수단을 박탈한 셈이다. 대신 북한 인민과 마찬가지로 협동농장과 공장에 화교들을 편입시켰다.

63년 화교학교에 조선어 사용명령이 내려졌고 64년엔 평양거주 화교들이 발간하던 유일한 잡지 ‘화신’도 폐간됐다.

이에 따라 58년 1만4451명에 달하던 화교 인구는 급격히 줄었다. 상당수가 중국으로 되돌아가 버린 것. 북한 통계에 따르면 90년 화교인구는 8000여명. 30여년 사이에 40% 이상 줄어든 셈이다.

북한의 화교들이 다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식량난이 심화되면서부터. 이들이 중국에 가 식량 옷가지 비누 치약 신발 등 생필품을 구해오자 북한은 중국 방문횟수의 제한조치를 사실상 풀었다. 대중국 관문인 신의주의 상권도 이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게 최근 북한 방문자들의 전언.

현재 북한의 화교인구는 9000∼1만명선. 90년대 들어 꾸준히 늘어난 결과다. 화교자본 문제에 밝은 양필승(梁必承) 건국대교수는 “최근 북한이 중국의 개방정책을 높이 평가하고 협조관계를 강화하면서 북한내 화교의 지위도 크게 향상됐다”며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중국 장쩌민(江澤民)주석의 회담 성사에도 이들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세계 각지의 ‘화상(華商) 파워’는 한반도와는 전혀 다르다. 현재 전 세계 화교인구는 90개국 5700여만명. 연간 소득도 4500억달러에 이른다.특히 동남아에서는 화상들이 국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도 많다. 아시아 1000대 기업 가운데 517개가 화상 소유다. 이들이 재산을 빼돌리면 동남아 경제는 붕괴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98년5월 인도네시아 화교들의 탈출러시가 이 나라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기도 했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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