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의 키에 130㎏의 거구로 1982년부터 98년까지 16년간 독일을 통치하면서 통독의 위업을 이룬 헬무트 콜(사진)전총리에 대한 청문회로 독일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베를린에서 열린 콜 전총리의 청문회는 기민당의원들과 콜전총리의 ‘말 맞추기’ 의혹이 제기되면서 개시 3시간만에 중단됐다. 이 청문회는 200만마르크(약 11억원)에 이르는 콜 전총리의 개인 비자금 및 총리 퇴임 직전의 자료파기 의혹을 따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청문회를 주관하는 의회 특별조사위 소속 기민당 의원 안드레아스 슈미트와 비트마 슐레 등이 사전에 콜과 정기적으로 만나 예상 질문과 청문회 일정 등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행으로 치달았다. 집권 사민당의원들은 청문회를 1주일 연기하자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들은 “콜은 별 수 없이 청문회에 재출석해야 한다”고 전한다.
콜은 이날 청문회에서 “비자금으로 어떤 이득도 보지 않았다”며 “이번 청문회는 나의 재임 16년간의 치적을 훼손하려는 음모”라고 비난했다. 콜은 총리 재직 당시 신고하지 않은 정치 자금 200만마르크를 받았다고 시인했었다. 독일 국내법에 따르면 20만마르크 이상의 정치자금은 신고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사특위는 28일 콜의 재임 당시 비리를 밝혀줄 수 있는 자료들이 조직적으로 폐기돼버렸다고 공개했다. 특위는 “이 자료들은 동독 국유재산 민영화 관련 문서를 비롯해 총리실에 보관된 컴퓨터 파일의 3분의 2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비자금 문제는 콜의 업적 때문에 비켜갈 여지가 있지만 공문서 폐기는 명백한 위법이어서 ‘20세기의 위인’이 ‘21세기의 수인(囚人)’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흘러 나온다.
<박제균기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