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람 아이어 세계은행 서울사무소장은 최근 “한국이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도 본궤도에 올랐다고 판단해 서울사무소를 폐쇄하기로 했다”고 우리 정부에 통보했다.
세계은행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던 97년말부터 98년까지 구조조정차관 등 총 70억달러를 지원하면서 위기극복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서울사무소를 설치했다. 당시 지원액은 단일 국가 기준으로 세계은행 출범 이후 최대일 뿐만 아니라 자금제공도 신속하게 이뤄져 한국이 유동성 부족에서 벗어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성장률 금리 환율 등 주로 거시경제 현안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한 반면 세계은행은 기업 및 금융 개혁 프로그램과 관련한 자문을 담당해왔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올 1월 한국에서 철수한데 이어 세계은행까지 떠남에 따라 외환위기 때 국내에 들어온 국제금융기구는 IMF만 남게 됐다.
세계은행 수석연구위원을 겸하고 있는 전광우 국제금융센터 소장은 “IMF가 구제금융의 대가로 고금리 처방을 요구했을 때 세계은행은 IMF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해 저금리와 사회안전망 구축 쪽으로 정책기조를 바꾸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슈티글리츠 수석부총재는 당시 “한국처럼 기업 부채비율이 높은 나라에 고금리 정책을 쓰면 경제 주체들이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외부자금 유입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면서 한국 특성에 맞는 경제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54년 세계은행에 가입한 한국은 60∼7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저리의 장기자금을 빌려쓰는 혜택을 누렸으며 95년말 융자대상국에서 졸업했다가 97년 다시 세계은행 돈을 빌리는 처지가 됐다. 한국 정부의 환대를 받으면서 화려하게 서울사무소를 개설했던 98년 초와 비교하면 조용히 짐을 꾸리는 지금의 모습은 격세지감마저 느끼게 한다.
전소장은 “앞으로 남북경협이 본격화되면 북한의 경제개발 재원을 조달하는데 세계은행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며 “세계은행과의 관계를 계속 긴밀하게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