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신간]700년만에 햇빛 본 서민판 '동방견문록'

  • 입력 2000년 7월 7일 18시 51분


▼'빛의 도시' 야콥 단코나 지음/ 데이비드 셀번 영문편역/ 까치▼

1274년 중국에 들어와 17년간 중국에 머물며 쿠빌라이 칸의 신하가 됐던 마르코 폴로.

그가 지은 ‘동방견문록’은 중국을 서양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그보다 3년 전인 1271년 8월 중국에 도착해 6개월간 머물렀던 이탈리아의 유대계 상인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주인공인 야콥 단코나의 기록이다. ‘동방견문록’이 상층부의 문화와 삶의 기록이라면 ‘빛의 도시’는 지방 대도시 민중의 문화와 삶의 내면을 통찰한 기록이다.

이 책의 원고는 그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가 700여 년만인 1991년 익명의 소장자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와 미국 시키고대 영연방 특별연구원 등을 역임한 데이비드 셀번에게 보여주고 번역 출간을 허락해 1997년 영역본으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출간되자마자 1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될 만큼 전세계의 관심을 끌었지만 아직 원고가 베일에 가려져 있어 이 책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역자후기에는 이 책이 위작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까지 조목조목 정리해 놓았다.

‘빛의 도시’는 현재 푸지엔성(福建省) 취앤저우(泉州)에 위치한 13세기 중국의 국제무역도시 츠퉁(刺桐)의 별명이다. 불빛이 꺼지지 않는 도시라는 뜻의 이 이름은 당시 해상 실크로드의 종착지로 세계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중의 하나였던 이 무역항의 면모를 잘 묘사해 준다.

6개월이라는 짧은 체류기간이었지만 저자는 극심한 혼란기였던 당시 중국사회의 정치적 혼란상, 신흥 상인계급의 대두, 원로 지식인들과 신흥 상인계층간의 치열한 사상논쟁, 의식의 변화와 전통 도덕관의 붕괴과정, 대담한 성문화와 동성애 등을 속속들이 보여 준다.

이 책이 위작이라는 주장에 대해 영어편역자인 데이비드 셀번은 “마르코 폴로나 ‘동방견문록’의 진위여부도 밝혀진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심지어 이 책이 셀번 자신의 위작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나의 위트와 학식을 상당히 높이 평가해 주신 셈”이라고 반박한다. 오성환 이민아 옮김, 507쪽, 1만9000원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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