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학부모들은 요즘 해리 포터 4권을 구하기 위해 ‘즐거운 고생’을 하고 있다. 8일 0시1분부터 판매에 들어간 초판 380만부가 순식간에 동이 나 책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든 탓이다.
버지니아주 비엔나의 주부 캐럴 앤(40)은 “판매 개시 2시간 전부터 집 근처 크라운 서점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으나 서점측에서 물량 부족을 이유로 예약자들에게만 책을 판매하는 바람에 허탕을 쳤다”며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주말 내내 많은 서점을 헤맸지만 책은 사지 못하고 지금 예약을 해도 1주일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간된 4권은 분량이 752쪽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백경(白鯨)’ 등 웬만한 장편소설보다도 두껍다. 어른들도 부담을 느낄 분량이지만 많은 미국 어린이들은 이 책을 붙잡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워싱턴에 사는 크리스티나 브라운(12)은 “책이 두꺼운 만큼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서 좋다”며 마냥 행복해 했다. 해리 포터 1∼3권은 400쪽 정도의 분량이었다.
평소 자녀들이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에 몰두하느라 책을 외면하는 것을 보며 걱정했던 부모들은 흐뭇할 수밖에 없다.
해리 포터의 열풍은 대단하다. 9일 뉴욕 타임스지의 주간 베스트 셀러(15권) 소설 분야엔 98년부터 출판된 해리 포터 시리즈가 2위(3권·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5위(1권·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7위(2권·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나란히 올랐다. 다음 주엔 이번에 출판된 4권이 1위를 차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대형 서점 번스 앤 노블의 스티브 리지오 부회장은 “해리 포터 시리즈에 빠진 어린이들은앞으로 평생 책 읽는 즐거움에 사로잡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이 시리즈의 경우만 놓고 인터넷 시대에 책이 여전히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점점 더 많은 어린이들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 시대적 추세이기 때문. 뉴욕 타임스는 최근 인터넷 조사기관인 ‘그룬발트 어소시에이트’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97년 800만명에 불과하던 어린이와 청소년층 인터넷 사용자가 올해 2500만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2005년까지는 그 숫자가 지금보다 70% 증가한 4250만명으로 느는 등 어린이와 청소년층의 인터넷 사용이 급증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망했다.
그룬발트 어소시에이트의 피터 그룬발트 회장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터넷 사용 증가는 어머니들이 인터넷을 교육개발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는 데 따른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풀이했다.
자녀들과 함께 해리 포터 시리즈를 계속 읽고 있다는 존 설리번(42)은 “해리 포터가 부린 최고의 마법은 인터넷 시대에 전통적인 책읽기의 효용과 즐거움을 되살린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로 인해 미국의 어린이들이 인터넷과 독서를 모두 활용하는 슬기를 깨우쳤다는 지적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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