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평화회담 결렬]강경세력 의식 의견차 못좁혀

  • 입력 2000년 7월 26일 18시 50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11일부터 열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중동평화협상이 열린 지 보름만인 25일 끝내 결렬됐다.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회담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음에도 동예루살렘 문제 등 핵심 쟁점의 합의점을 찾지 못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발표했다.

52년간 지속돼 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적대관계를 끝낼 절호의 기회로 평가받은 이번 회담이 무산된 직후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결렬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상대방을 비방하고 있어 양측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팔레스타인 주민 수백명이 25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궐기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샤울 모파즈 이스라엘 군참모총장은 이번 협상 결렬이 양측의 광범위한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대규모 유혈 충돌이 빚어질 우려마저 낳고 있다.

▽협상과정〓이번 협상이 시작될 때부터 타결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93년 이후 7년 동안 계속된 협상에서 나타난 양측간의 견해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

양측은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의견차를 좁혀 합의에 이르렀으나 ‘뜨거운 감자’에 해당하는 동예루살렘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은 분리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는 입장인 반면 팔레스타인은 ‘장래 나라의 수도’로 모두 반환해야 한다고 맞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은 타협안으로 1967년 3차 중동전 때 점령한 동예루살렘의 상당부분을 팔레스타인에 넘겨주고 3대 종교의 성지가 몰려 있는 구시가지의 일부에 대해 공동주권을 행사하자고 제안했다. 더 이상의 양보는 없었다. 팔레스타인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회담기간 중 서너차례 얼굴을 맞댈 정도로 서로를 불신한 바라크와 아라파트는 서로 회담장을 떠나겠다는 으름장을 놓으며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기도 했다. 19일 밤 양측은 결렬을 선언했다가 다시 마주앉았으나 거리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20일 선진 8개국(G8)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에 갔다가 23일 돌아온 클린턴 대통령은 36시간 가까운 마라톤 협상을 중재했지만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결렬 배경〓양측 모두 국민의 여론과 강경세력을 의식, 신축적인 자세로 협상에 응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바라크는 이번 회담과 관련해 내각불신임의 위기를 맞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도 24일 “바라크가 너무 많이 양보하려 한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아리엘 샤론 국가인프라장관도 “어떤 총리도 예루살렘을 양보할 권리는 없다”고 경고했다. 아라파트에게는 국내 이슬람원리주의 세력과 아랍권의 반발이 큰 부담이었다. 극렬단체인 하마스는 “동예루살렘을 양보하면 폭력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과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왕세자도 알 아크사 사원 등 이슬람 성지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압력을 가해왔다.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대통령도 여기에 가세했다.

▽전망〓협상 결렬의 여파와 후유증은 상당히 길고 깊을 것 같다. 중동전문가들은 80년대 후반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봉기(인티파다)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93년 오슬로 협정 체결로 경찰력을 갖게 된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느 정도 무장한 상태이기 때문.

바라크는 25일 기자회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면서 협상결렬의 책임을 아라파트에게 돌렸다. 팔레스타인측도 “이스라엘측이 무리한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의 골은 이제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더욱이 아라파트는 평화협정이 실패하더라도 9월13일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포할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양측의 반목은 이스라엘과 아랍권간의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아라파트측은 협상 결렬에 대비해 석유와 의약품 등 비상물품을 준비하고 팔레스타인 경찰도 실탄 사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이스라엘도 전군 비상경계령을 내려놓았다고 뉴스위크지 최근호가 보도했다.

바라크와 아라파트가 협상 결렬 직후 최종 시한인 9월13일까지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도 일단 ‘최악의 시나리오’만은 피해보자는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윤양섭·홍성철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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