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그는 이 시대의 가장 촉망받는 20대 피아니스트 중 한사람으로 음악팬의 사랑을 받는다. 가냘픈 인상과 어울리지 않게 그는 무게 실린 타건(打鍵)과 중후한 해석을 자랑한다. 열여섯살 때 일본 덴온사에서 데뷔음반으로 내놓은 라흐마니노프 ‘에튀드 타블로’ 음반이 프랑스 ‘디스크 그랑프리’ 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에라토 텔덱 등 유명 음반사에서 앨범을 열한장이나 내놓았다.
프랑스 출신으로서는 드물게 그는 드뷔시 등 프랑스 출신 작곡가보다 슈만 브람스 등 독일 작곡가의 ‘무게있는’ 작품을 즐겨 연주한다. 게르만과 라틴 양쪽 문화권에서 두루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
둘째, 그는 ‘야생동물 보호’의 상징적 인물로 자연보호론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의 음반 해설지를 열어보면 늑대의 목덜미를 껴안고 있는 그리모의 밝은 미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연주와 음반활동으로 벌어들이는 돈 대부분을 ‘땅’에 투자한다.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집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자기만의 ‘늑대 보호구역’을 넓혀나가기 위해서다. 주말이면 그곳에서 늑대 세 마리와 뛰어다니며 마음편한 시간을 갖는다.
“9년 전, 플로리다의 한 지방도로에서 늑대와 마주친 것이 처음이었지요. 신기하게도 서로 겁을 내지 않았고,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안아보기까지 했어요. 그 지방에 사는 제 친구는 평생 그런 광경을 처음 보았다나요.”
틈날 때 마다 그는 ‘야생에서 늑대가 처한 비참한 상태’와 ‘생태계 고리에서 늑대가 갖는 중요성’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팬이 만든 그의 홈페이지 (www.wdehaan.demon.nl)는 늑대보호센터의 홈페이지와 링크돼 있다.
최근 그의 중후한 연주와 미모를 쉽게 대할 수 있게 됐다. 최신 음반인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 피아노소나타 31번 및 32번 앨범과 함께 슈만 피아노협주곡,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1번 음반 등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수입됐기 때문.
“프랑스 피아노음악을 연주하자면 달걀껍질 위를 걷는 것 같아요.”
라벨의 피아노협주곡을 두 번이나 음반으로 내놓기는 했지만, 그의 말처럼 ‘섬세한’ 프랑스음악은 그의 본령이 아니다. 그의 손가락이 빚어내는 섬세한 터치는 특히 중음역(中音域)의 강건한 포르테에서 빛을 발한다.
얼핏 ‘피아노의 여걸’로 불리는 아르헤리치를 연상케 하지만 그의 연주에는 아르헤리치식의 톡쏘는 자극성이 적다. 무덤덤할 정도로 기복을 작게 하면서 선율사이의 연결 및 손가락 사이의 음량균형에 신경쓰는 사려깊음이 그의 연주에 배어나온다. 투명하게 빛나는 음색의 매력도 그의 음반을 수놓는 매력이다.
밝은 햇살 아래 야생의 동물들과 뛰고 구를 때 비로소 충만해지는, 그 무엇인가가 그의 연주를 수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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