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는 '同名異人 공화국'…인구 전체가 1150개 이름 공유

  • 입력 2000년 7월 31일 19시 05분


어느 휴일 사람들로 붐비는 모스크바의 고리키 공원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친구를 찾았다. “사샤!” 그러자 수십명이 발걸음을 멈추고 일제히 돌아보았다. 사샤는 남자이름인 알렉산드르와 여자이름인 알렉산드라를 줄여 부르는 애칭. 80년대에 태어난 남자아이 100명 중 8.5명의 이름이 알렉산드르였으니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하다.

러시아어 연구소의 알렉산드라 수페란스카야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러시아인의 이름은 겨우 20∼30개 안에서 ‘해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80년대에 태어난 여자아이 10명 중 9명은 예카테리나, 8명은 안나였다. 같은 시기에 남자아이의 이름은 알렉산드르, 알렉세이, 드미트리 등이 대부분.

시대에 따라 유행이 있어 30년대 말부터 50년대 초까지는 여자는 갈리나, 남자는 블라디미르가 강세였고 50년대 초부터 60년대 말까지는 여자는 옐레나, 남자는 세르게이가 인기였다.

한때 러시아 여인의 대명사였던 나타샤라는 이름은 최근 거의 쓰지 않는다. 8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러시아 인터걸’의 대명사로 불렸기 때문. 터키에서는 나타샤라는 이름의 젊은 러시아 여성에 대해서는 아예 입국을 거절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이름이 다양하지 못한 것은 슬라브정교의 성인(聖人)들에서 이름을 따온 전통 때문. 전체 러시아인의 95%가 이런 방식으로 이름을 짓기 때문에 남자 이름은 900여개, 여자 이름은 250여개에 지나지 않는다. 1억5000만명의 이름치고는 지나치게 빈약하다.

이름이 다양하지 못한 것은 오랜 전체주의체제의 산물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들이 얼마나 다양한 이름을 사용하느냐가 민주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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